야생화 시집 (3)

해설 / 인고(忍苦)의 여로(旅路)에 핀 꽃詩 (글 : 윤강로)

청수거사 석당 2007. 2. 26. 04:40

 

한국의 야생화 시집 (3) [눈에 들어와 박히면 그게 다 꽃인 것을]





/해/설/






인고(忍苦)의 여로(旅路)에 핀 꽃詩



尹   崗   老 (시인)

 

  인간은 누구나 타인에 대하여 방관자인 개별적 존재다. 이기적 인간은 그렇게 서로의 소외자다. 세상이라는 망망한 바다에 뜬 고도(孤島)와 같은 인간은 홀로 수많은 질곡(桎梏)의 파도에 시달리는 고독한 존재다. 인간은 고도(孤島)인 자신을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잊었다가 절실함 때문에 ‘자기(自己)’로 귀환(歸還)한다. 자기인식에 대한 절실함은 대개 아픔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실체적 존재인 자기에 대한 깨달음이다. 고뇌스러운 고통에 머무를 때 인간은 아픔에 눈뜨고 이를 극복하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고도(孤島)인 자신의 고통으로 타인인 고도(孤島)의 고통을 보게 된다. 삶의 즐거움은 홀로 짊어져서 무거움의 고통이 없지만, 아픔의 고통은 홀로 넘쳐서 감당하기 힘들다. 타인에게 방관자의 시선(視線)이 아니라 위안의 시선(視線)을 보낼 때 아름다운 인간애(人間愛)가 된다. ‘사랑의 용량(容量)은 그 인간의 용량(容量)과 비례한다.’고 누가 그랬던가. 시인은 스스로의 내면세계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고통을 위로하는 존재다.
  이기적 인간에서 인간애(人間愛)가 되는 詩세계를 펼친 金承基 시인의 한국의 야생화 시집「눈에 들어와 박히면 그게 다 꽃인 것을」을 보면, 아픔을 통해 깨달음의 길로 들어서는 ‘통증(痛症)의 여로(旅路)’가 따뜻하게 읽혀진다. 그러면서 시리고 절실하다. 요즈음 현대적 첨단의식이라는 미명하에 왜곡된 시적 양상으로 시심(詩心)을 어지럽히는 몰인간적 사이비 詩가 많다. 단언하건대, 시인은 인간을 위한 인간애적인 詩를 써야 한다. 詩라는 장르는 철저하게 ‘인간적인’ 미적 윤리를 지닌다. 그 윤리는 예술적 윤리이며, 어떤 테두리에 가둘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전범(典範)이 없으며 미적 속성(屬性)을 지닌 것으로서 진정으로 詩세계에 눈뜬 시인에게 감지(感知)되는 것이다. 金承基의 이 시집은 그러한 정신적 풍토에서 떠난 씨앗의 근거를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시집 모두(冒頭)에 “그리운 사람에게/그리고/장애인을 비롯하여 병상에 있는 모든 분들께/이 시집을 바칩니다.”라고 밝혔다. 그래서 이 시집은 여느 일반적인 시집과 다른, 인간을 위한, 인간에게 위로가 되는 시집이라는 차별화를 지닌다. 그것은 단순한 센티멘털의 일시적 충동에 의한 것이 아닌 전생애적인 내용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金承基의 詩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통증의 부분에 가 닿아서 자극하고, 아픔이 인간적인 숙명임을 일깨운다. 그런 공감적 위안의 세계를 펼치고 있다. 인생은 고해(苦海)라 했다. 그런 관점에서 金承基의 詩에서는 인생론적인 관념의 꽃냄새가 난다. 아픈 자가 아픈 자에게 보내는 꽃향기의 알싸한 분위기가 절실하고 절실하다. “지금은 아픈 몸,/다친 허리와 팔다리를 이끌고/밤이 되면 더욱 심해지는 통증을 껴안으며,/낮에는 꽃을 찾아서/밤에는 詩를 풀어내는/오늘도 열병을 앓고 있다.”라고 金承基는 자서(自序)의 중반부에 읊고 있다. 고통과 상실은 통렬하게 자아(自我)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게 한다. 즐거움과 행복감은 솜사탕처럼 삶의 순간에 탕진되지만, 고통과 상실은 삶의 관절을 삐거덕거리게 하면서 생을 철들게 한다. ‘어리석은 자는 고통이 자기만의 것’으로 삶의 표정을 찡그리지만, 철든 자는 공유(共有)하면서 살아가는 고통의 삶을 사랑한다. 金承基는 꽃시집으로 역경을 극복하면서 꽃밭서정의 아름다운 詩세계를 가꾸고 있다.

  金承基의 ‘꽃’에 대한 섭렵은 다양하고 깊다. 끈질기게 밀착하고 건드려서 꽃의 반응을 기다린다. 결국 꽃을 통한 자기규명과 인간탐색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꽃과 인간의 일치된 미학(美學)이다. 그의 인간 탐색은 ‘나’에 대한 미감적 존재를 밝히는 데서 시적 희열을 느끼지만, 그것은 고뇌스럽고 분열된 자의식을 동반(同伴)한다. ‘나’란 얼마나 모순되고 불가해한 존재인가? 시인의 내면은 그렇게 회의(懷疑)와 희열이 교차하는 자기교란으로 미감적 자아(自我)를 찾아간다. 그러나 金承基의 시적 내용은 내면을 뒤지는 과정으로서 결과론적인 단정을 내리지 않는다. 있는 것은 있을 뿐이다. 그렇게 피는 것이 꽃이다. 그래서 金承基의 詩는 까다롭지 않다. 순하게 인식되는 보편성으로 복선이 없다. 서정은 부드럽고 자연스러우며 시적 호흡은 편안하다. 뒤틀지 않고 정겹게 보기, 자아(自我)와 대상의 하나가 되기, 서로의 표정 훔쳐보기로 닮기…의 꽃의 서정이다. 그렇게 나와 꽃이 동격의 생명체로 미감(美感)의 생태(生態)를 부여한다. 정서가 부드러운 꽃의 詩는 자연에 순응하는 생태(生態)의 자연미로 시끄럽지 않다. 金承基는 자연의 순환과 자연성의 풍경을 흩트리지 않는 비폭력적 성정(性情)을 지닌 시인임에 틀림없다. 시인은 극단적 평화주의자다. 인생과 자연의 사계(四季)를 동일한 순환으로 해석하고, 인간의 내면과 꽃의 내면을 열어 교감(交感)하게 한다. 꽃이 사람이고, 사람이 꽃이다. 꽃은 한갓 유기물이 아니라 심혼(心魂)이 깃든 미적 자태의 생명감이다. 金承基의 사물관(事物觀)은 다분히 애니미즘 — 정령주의(精靈主義)에 젖어있다. 살아있는 것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있기 때문이다.

집 뒤 언덕배기
옹기종기
늦어진 봄이라고
잎도 없이 꽃송이 내밀어 올린
머위꽃이
어두운 마음 하얗게
발길 붙잡네

들여다보고
들여다보고
다리 저리도록 앉아 있었네

                                — 「머위꽃」에서


  위의 詩에는, ‘관계맺음’의 인식세계가 있다. 꽃과의 대면에서 사람들과의 ‘섞여살기’에서 실패한 소외(疏外)가 있고, 대상을 통해 자기치유(自己治癒)를 꾀한 죄의식(罪意識)과 같은 자의식(自意識)이 있다. 金承基는 ‘아픈 자’의 내면을 뒤지면서 교감(交感)의 관계를 시화(詩化)하고 있다. 독자는 평범한 대상물과의 ‘관계맺음’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정념(情念)을 읽게 된다. 金承基는 휴머니스트 시인이다. 그의 위안의 교감(交感)은 따뜻한 정서의 애틋함을 불러일으킨다.

오월에 내리는
함박눈
갑작스런 폭력시위
기상이변이다

눈송이마다
폭폭 터지는
향내
최루탄 가스다

마취당한 산
온통
하얗게 얼어붙었다

입술 새파래진 하늘
눈물 콧물 질질 흘리며
파르르 떤다

                               — 「팥배나무 꽃」전문



번지는 분 냄새
햇살이 바람났다

토해내는 꽃멀미

하늘도 놀라
봄이 까무러쳤다

                                  — 「돌단풍」중에서


  자연물인 꽃과 동격인 자아(自我)의 현실에는 언제나 바람이 분다. 고요히 있고자 하나 흔들려서 견딜 수 없는 바람이 분다. 내면의식이 때로는 흔들려서 고요에 파문이 인다. 민감한 정서의 탓이다. 위의 詩는 산천과 계절에 대한 느낌을 노래했지만 강한 표현에서 화자(話者)의 격정을 더 느끼게 된다. 온건함이 깨진 어조(語調)로 자연의 변화가 주는 의미와 연계된 심적 상황이 단순치 않음을 느끼게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가지>와 <서울제비꽃>에서는 소외(疏外)에 시달린 내면이 인고(忍苦)로 뒤척이고, <뫼제비꽃 지고>와 <계룡산 금붓꽃>에서는 그리움에 막연한 심사를 강풍 같은 심적 동요로 거칠게 흔들린다. 위의 詩에서 보여주는 격정적 감정 표현은 시적 생동감과 함께 진한 실체적 생명의 존재감을 느끼게 한다. 시적 어조(語調)의 완급(緩急), 강약 등이 빚어내는 속도감은 시집 전반에 흐르는 보편적 흐름에 변화를 주고 있다.

  金承基의 詩에는 삶과 자연 등 시적 대상을 안정 정서로 스며들게 하는 정서적 틀이 있다. 이따금 격정적인 표현의 변화로 지루함을 깨면서 특유의 시적 호흡법으로 긴장감을 부여하지만 전체적으로 유순한 전달양식이 지배적이다. 이에서 나름대로의 관습화된 개인적 표현양식을 보여주는 독자성을 획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산하는 물소리
바다로 가는데
이제서야 산을 등에 지는
애증으로 얼룩진 가슴이옵나이다

흘러내리는 땀방울
바람으로 씻어 주소서

달빛 없는 수풀 우거진 길
밤낮없이
홀로 걸어야 하옵나이다

내딛는 발걸음
걸음마다 자비광명 꽃불 밝히시어
검은 돌부리
채이지 않게 하소서

                                — 「층층나무」중에서


  조용한 어조(語調)의 위 詩는 내면에 닿아 적막하다. 적막 속에서 고요히 울리는 내면의 소리다. 비탄조(悲嘆調)이나, 내면의 음성이 낮고 고요해서 온전한 마음으로 읽힌다. 金承基는 시적 상황이나 시적 분위기를 빚는데 능숙하다.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능숙한 것이다. 위의 詩 속에 연루된 모든 요소의 상상적 자태가 적막하게 떠오른다. 고즈넉한 詩의 적막감이 내면에 숨쉬고 있다.

  시집「눈에 들어와 박히면 그게 다 꽃인 것을」에는 꽃의 목록(目錄)만큼 온갖 꽃이 있고, 꽃의 모든 것이 있다. 전술(前述)한 바와 같이 단순 대상물로서의 꽃이 있고 내면화된 꽃의 관념이 있다. 그리고 자아(自我)와 일치된 꽃의 미감적 형상미가 있다. 꽃은 자연의 이치로써 생명의 가치를 갖는다. 金承基는 꽃의 형상과 속성에 깃든 가치세계를 추구하면서 가치적 생명으로 피는 생명의식(生命儀式)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고 후유증/흐린 마음/그림으로/잠시나마 고통 잊으려고//노랑물감 찍어/하늘 복판으로/치켜든/붓/자루//꽃인 줄 알고/흰나비/먼저 내려와 앉는다”(詩 <노랑꽃창포>)가 보여주는 결이 고운 시적 표출의 호소력이나, “우주를 밝히려고/켜든 촛불//어둠을 태우는/고통/눈물 흐르고//검게 타버린 아우성//구름 한 점 없던 하늘/대낮이/피멍 들었다”(詩 <꽃창포>)의 단단한 시적 구조의 함축미는, 金承基의 시적 역량을 가늠하는 수작(秀作)으로서 詩 전체에 대한 신뢰를 획득하고 있음이다. 시인에게 있어서 詩가 좋으면 일단 모든 것이 좋은 것이다.
  金承基의 내면은 꽃밭이 아니다. 꽃이 별처럼 빛나고 꽃의 생명이 서성거리는 하나의 우주다. 그러한 詩세계를 내면에 지닌 金承基의 꽃은 아직 목록(目錄)에 오르지 않은 미지의 꽃씨로 날리고 있다. 꽃밭 같은 시집은 미궁(未窮)의 꽃씨의 허공을 예감한다. 이 시집의 꽃으로 전개된 시의식(詩意識)은, 말하자면 근원적 생명에 대한 사유(思惟), 정신적 삶으로 지향하는 관조(觀照)의 은밀한 시선(視線), 안식(安息)을 바라는 현실삶의 갈증, 일상 속에서 체험하는 흔들림… 등 내면세계의 일렁임은 끝없이 꽃을 만나 꽃이 될 것이다.

홍조 머금은 얼굴
초저녁 보름달 녹아들고 있구나

섬섬옥수로 뜯는 가얏고
시조창
찌르르 찌르르
하늘이 가슴팍 훑어내리네

                                  — 「부용」중에서


  위의 詩는 金承基 시인의 표현적 기조(基調)와 흐름의 가락을 잘 나타내고 있다. 한국적 전통의 내재율이다. 이처럼 사유(思惟)와 표출이 모두 우리의 정조(情調)로 빚어졌기에, 시인이 詩로 풀어내는 미감적 생명의식(生命意識)과 태(態)의 양상(樣相)은 조용한 꽃길을 지나온 듯 시집을 덮고 나서도 그 여운이 한참이나 떠돌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