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 시집 (4)
비름
청수거사 석당
2009. 3. 28. 21:05
한국의 야생화 시집 (4) [꽃보다 아름다운 것이 어디에 있으랴]
비 름
이젠 내어줄 것이 없다
햇살도 바람도 공기도 물도
빌어먹고 살면서
하늘의 사명 받았다고 천기를 누설하며
나물로 살 뜯기고 허리 꺾이는 것
베풀음이라고
천방지축 팔 뻗고 소리치다가
병든 불구의 몸
제 앞가림 못한다며
사랑마저 떠나버린 빈집
더 이상 무엇을 내놓으랴
아무도 들어오려 하지 않는
빈 마당
둥지를 틀고
혼자 무엇이든 또 빌어먹어야 한다
빌어먹으며
기껏해야 한해를 사는 목숨
그윽한 향기 바란 적 없다
할 수 있는 건
목숨 붙어있을 때까지
詩꽃 피우는 일,
천기누설
기죽을 것 없다
꽃을 피운다는 건 누구나 모두
하늘에 죄를 짓는 일,
망가진 몸뚱이 속살까지 다시 뜯기며
한 번 받은 벌 또 받을지라도
용서는 무슨?
바라지도 빌지도 않겠다
※ 비름 : 비름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 중부지방 이남의 각처에 자생한다. 인도 원산으로 잎은 넓은 계란형으로 어긋나고 잎자루가 길다. 7월에 녹색의 꽃이 피는데, 잎겨드랑이에 모여 달리는 꽃이삭이 원추형을 이루고, 8~9월에 흑갈색의 광택이 나는 씨가 한 개씩 들어있는 열매가 익는다.「참비름」이라 하여 어린잎은 나물로 식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