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한국시인협회 가을 정기 세미나
2011 한국시인협회 가을 정기 세미나
가을이 깊이 내려앉았다. 도심에도 단풍이 짙게 물들었다. 가로수의 단풍 빛깔이 곱다.
한국시인협회의 정기 가을 세미나가 2011년 11월 5일부터 11월 6일까지 1박 2일로 안동에서 있었다.
2011년 11월 5일 토요일,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와는 달리 아침은 쾌청하게 맑아 있었다. 오전 08:00시에 서울 종로의 운현궁 앞에서 80여명의 회원을 나눠 실은 2대의 버스는 안동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중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를 거쳐 원주에서 중앙고속도로를 바꿔 타고 버스는 약 4시간을 달려 오후 12:30분경 안동에 도착했다.
예천이 고향인 윤승천 시인과 안동이 고향인 지레예술촌장 김원길 시인과 이육사문학관에 근무하고 있는 이위발 시인의 안내로 현지에서 합류한 20여명의 회원들과 함께 안동시 옥동에 자리 잡고 있는 '청포도주막' 식당에서 '참마막걸리'를 반주로 곁들여 안동찜닭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안동의 명물인 오리지널 '안동찜닭'은 서울의 체인점에서 먹는 것과는 식재료에서부터 조리법도 다르고 맛도 또한 색달랐다. '참마막걸리' 또한 안동의 토속주로서 특별한 맛을 지녔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안동시 정상동에 위치한 '원이엄마' 동상과 기념비를 찾았다. '원이엄마'는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세계인을 울린 450년 전 부부간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조선시대의 무덤 출토 유물의 주인공이다. 1998년 안동시 정상동 일대의 택지개발계획에 따라 2기의 무덤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조선시대 미이라와 함께 당시의 복식이 출토되었다. 미이라의 주인공은 16세기 조선시대에 살았던 고성이씨(固城李氏) 이응태(李應台 1556~1586)와 그의 할머니 일선문씨(一善文氏)였는데 시신은 모두 이중 목관에 들어있었고, 목관은 회곽(灰槨) 속에 들어있었다. 이 두 사람의 목곽 내부는 조금도 상하지 않았고, 염습(殮襲) 상태가 잘 유지되어 있어서 상장례(喪葬禮)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이응태의 무덤에서는 '만시(輓詩)'와 '한문편지', 그리고 애절한 필치로 쓴 '원이 엄마의 내간체 한글편지'와 함께 '머리카락으로 삼은 미투리'가 나와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들은 KBS 추적미스테리 '미이라 그것이 알고 싶다'(1998. 5. 28)를 비롯해 KBS 역사스페셜 '조선판 사랑과 영혼'(1998. 12. 12) 등 국내의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상세히 보도되었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저널《내셔널지오그래픽》(2007년 11월호)을 비롯해 고고학잡지《엔티쿼티》(2009년 3월호),《아케올로지》(2010년 3/4월호), 중국 국영 CCTV-4 등을 통해 소개되어 전 세계인들을 감동시켰다.
간단히 돌아보고 기념 촬영을 한 뒤에 '450년만의 외출'이란 주제로 출토유물을 상설전시하고 있는 국립 안동대학교 박물관으로 이동하여 영상과 유물을 관람하며 가슴 뭉클한 감동의 애틋한 부부 사랑이야기에 흠뻑 젖어드는 시간을 가졌다.
안동대학교 박물관의 관람을 마치고 시간이 많이 남아 안동댐을 관람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호반의 한쪽에는 이육사 시비(詩碑)가 있어 찾은 것이다. 안동은 선비의 고장으로 한국정신문화의 수도(首都)이다. 퇴계(退溪) 이황 선생의 도산서원(陶山書院), 서애(西涯) 유성룡 선생의 병산서원(屛山書院)이 있고,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에는 의병과 독립운동에 앞장서서 순국한 많은 선열들을 배출한 살아있는 선비정신의 고장이다.
안동댐의 관람을 마치고, 오후 17:00분경 안동 문화예술의 전당에 도착하여 백조홀에서 17:30분부터 세미나 행사를 가졌다. 먼저 제부의 순서로 詩낭송회를 가졌는데, 사무총장 전윤호 시인의 사회로 이건청 회장의 인사말씀이 있었고, 안동시장을 대신한 부시장의 환영사가 있었다. 이어 회원들의 詩낭송으로 장석주 시인의 <하루>, 신영희 시인의 <억새풀>, 홍경숙 시인의 <가을이 익어간다>, 이상호 시인의 <향일성>, 오정국 시인의 <파묻힌 얼굴>, 최영규 시인의 <나를 오른다>, 박병래 시인의 <아픈 詩>, 김두한 시인의 <숨소리>, 윤승천 시인의 <석주>를 낭송해 주었고, 마지막 순서로 이영식 시인이 <나는 지금 물푸레섬으로 간다>를 낭송해주었는데, 이영식 시인은 특별히 하회탈을 준비하여 1인 시극(詩劇)을 펼쳐 우리들로 하여금 웃음과 감동을 주었다.
제1부 詩낭송이 끝나고 10분간의 휴식을 취한 다음 제2부 세미나 행사를 가졌다. 조창환 시인의 사회로 진행된 세미나는 [선비정신과 현대시]라는 주제로 먼저 안동이 고향인 원로 김종길 시인이 <선비정신과 詩>라는 제목으로 발제(發題)를 하였고, 뒤이어 문학평론가 정효구 충북대 교수가 <선비정신과 한국 현대시 - 근현대시 100년 이후를 생각하며>라는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하였으며, 이에 대하여 한영옥 시인의 질의가 있었다. 특히 정효구 교수는 '경(經)으로서의 詩', '극기복례(克己復禮)와 본성(本性)회복으로서의 詩',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로서의 詩'라는 3가지의 단락으로 나누어 지금껏 우리의 현대시는 씨줄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인간중심주의와 개인중심주의의 모범생이 되어왔다면서, 앞으로 우리의 현대시는 경(經), 날줄, 도(道), 우주적 진리, 우주의 실상, 이런 것을 유교적인 선비정신뿐만 아니라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불성(佛性)이자 본심(本心)이, 유교식으로 말하자면 천지(天地)이자 본성(本性)이, 노장(老莊)식으로 말하자면 자연(自然)이자 무위(無爲)가, 대종교식으로 말하자면 일심(一心)과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정신이, 기독교식으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작용하는 세계를 아우르는 새로운 모색을 위해 고민할 때가 되었다며 우리의 현대시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 지향점을 제시해주었다. 그리고 이어 안동 지례예술촌장 김원길 시인이 <선비의길, 시인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하였고, 이에 대하여 이육사문학관에 근무하고 있는 이위발 시인이 질의를 하였다. 필자가 지금껏 참관해온 시인협회 정기 세미나 중에서 이번만큼 알차고 뜻있는 내용은 없었을 거라는 생각을 가졌는데, 특히 정효구 교수의 주제발표는 특색 있는 새로운 질문으로 우리들 가슴에 절실한 충격을 던져주었다고 본다.
시간이 흘러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오후 19:00시경에 세미나를 마친 우리는 안동예술의전당 지하에 있는 한식뷔페 '만남의 광장'에서 '안동소주'와 '참마막걸리'를 반주로 곁들인 '헛제사밥'으로 만찬을 즐겼다. 그리고는 밤 20:30분경에 숙소로 이동하였는데, 일부는 '안동지례예술촌'으로 가고 일부는 '한국국학연수원'으로 이동하였다. 필자는 '한국국학연수원'으로 숙소를 배정받아 여장(旅裝)을 풀었다.
밤새 비가 내렸다. 11월 6일, 날이 밝았어도 하늘은 잔뜩 지뿌린 날씨에 먹장구름이 어둡게 덮여 있었다. '한국국학연수원'의 지하 구내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오전 08:00시경에 '도산서원'으로 출발했다. 약 한 시간 정도를 달려 '도산서원'에 도착했다. '도산서원'은 안동댐의 상류 안동호의 산자락 위에 위치해 있었다. 단풍으로 짙게 물든 '도산서원' 조용하기만 했다. 서원의 마당에서 내려다보는 안동호의 물빛이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의 먹장구름 아래서 하얗다. 한창 짙게 물든 단풍과 함께 서원의 풍치가 그야말로 한 폭의 수채화다. 호수 한쪽의 기슭에 퇴계가 아침저녁으로 산책했던 '퇴계의 길'이 보인다. 퇴계 선생은 저 길을 사색에 잠기며 걸었으리라.
오전 10:00시경 '도산서원'의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하늘에서 이슬비가 흩뿌린다. 버스는 다시 달려 '이육사문학관'으로 향했다. '이육사문학관'에 도착하니 하늘에서 비가 줄줄 내린다. 이육사의 삶과 詩에 대한 영상 감상과 관장의 설명을 들은 뒤에 유물을 둘러보며 다시금 이육사의 詩정신과 애국심에 숙연해진다.
오전 11:00시경 '이육사문학관' 관람을 마치고 영양의 주실마을에 위치하고 있는 '조지훈문학관'으로 이동하기 위해 출발했다. 약 한 시간 반을 달려 영양 '주실마을' 입구에 있는 식당에서 약초비빔밥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주실마을'에 도착하니 비는 그쳐 있었다. '주실마을'은 한양조씨의 집성촌이다. 기묘사화로 조광조 선생이 화를 당하자, 그 후손 중의 한 분이 화(禍)를 피해 낙향하여 매방산 아래 터를 잡고 일으킨 마을로 조지훈 시인이 태어나고 자란 마을이다. 조지훈 시인의 생가인 유서 깊은 '호은종택(壺隱宗宅)'이 고풍스런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지훈문학관'이 이웃해 있다. 마을의 뒤편에는 조지훈 시인의 동상과 함께 '시인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우리는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내기도 한 조지훈 시인을 추모하며 묵념을 올리고 '지훈문학관'을 관람했다. 마지막으로 '시인공원'과 '호은종택'을 관람하는 것으로 세미나 행사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다.
오후 16:00시경 서울로 출발했다. 다시 4시간을 달려 하루 전 아침에 출발했던 운현궁에 도착하여 서로 이별의 악수를 나누고 귀가(歸嫁)를 서둘렀다.
고고한 선비의 정신이 살아있는 안동에서 개최한 이번의 정기 세미나는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알차고 보람 있는 행사였으며, 언제고 다시 시간을 내어 찾아가고 싶은 여행이었다.
이번 세미나 행사가 한국시인협회에서 개최하는 올해 밖으로의 나들이 마지막 행사이다. 이제 단풍도 낙엽으로 내려앉고, 나목(裸木) 위로 겨울 하늘에서 눈이 내리리라. 내년이 되고 다시 봄이 되어 문학기행을 시작으로 펼쳐지는 나들이 행사를 벌써부터 기대해 본다.
※ 450년 전의 애틋한 부부 사랑 이야기가 서려 있는 '원이 엄마' 동상에서.
※ 안동댐에서.
※ 안동댐 호반의 '이육사 詩碑'에서.
※ '이육사문학관'의 이육사 詩碑와 동상 앞에서.
※ 영양 주실마을의 '지훈문학관'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