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인협회

제53회 한국시인협회 정기총회와 제44회 한국시인협회상 시상식 참관기

청수거사 석당 2012. 3. 26. 06:16

제53회 한국시인협회 정기총회와 제44회 한국시인협회상 시상식 참관기


  서기 2012년 3월 24일 오후 15시, 서울의 충무로 남산 밑에 자리한「문학의 집 ‧ 서울」에서 한국시인협회가 주관하는 '제44회 한국시인협회상'과 '제8회 젊은시인상'의 시상식과 아울러 '제53회 정기총회'가 있었다.
  이날 행사는 회원 약150여명이 운집(雲集)한 가운데 성대하게 치러졌는데, 먼저 시상식이 있은 다음, 정기총회가 진행되었다.
  먼저 전윤호 사무총장의 사회로 한국시인협회상 시상식을 거행하였는데, '제44회 한국시인협회상'에는 유안진 시인의 시집「둥근 세모꼴」이 수상하였고, '제8회 젊은시인상'에는 이재훈 시인의 시집「명왕성 되다」가 수상하였다. 심사위원장 신달자 시인을 비롯하여 심사위원으로 나태주 시인, 허형만 시인, 한영옥 시인, 박주택 시인이 맡았는데, 먼저 이건청 회장의 인사말씀이 있은 다음, 박주택 시인의 심사경위보고와 심사평 발표가 있었고, 이어 시상식이 거행되었다. 그리고 김남조 시인이 축사를 하였으며, 수상자들의 수상소감과 꽃다발 증정, 기념사진 촬영, 수상자 대표詩의 축하낭송으로 이어졌다.
  유안진 시인은 수상소감에서 시력(詩歷) 48년이나 되는 70세가 넘은 뒤늦은 때에 수상하게 된 것은 오로지 우정과 동정으로 주는 상이라고 여겨 감사와 미안, 황송과 죄송의 무거운 무게를 느낀다고 피력하였다. 또한 이재훈 시인은 첫 문학상으로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런 영예의 단상에 올라선 적이 없었다면서 눌변(訥辯)의 詩를 쓰는 미련 때문에 받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앞으로 더욱 미련한 일편단심의 시간을 살아내야겠다는 격려로 받아들인다고 하였다.
  시상식이 끝나고 10분의 휴식이 있은 다음 '제53회 정기총회'를 개최하였는데, 먼저 이건청 회장의 인사말씀이 있었고, 이어서 전윤호 사무총장의 영상물을 통한 2011년도의 사업보고와 김지헌 감사의 2011회계년도의 감사보고가 있었다. 그리고 감사패 증정이 있은 다음, 앞으로 2년 동안 한국시인협회를 이끌어갈 제38대 신임회장을 선출하였다.
  신임회장은 평의회에서 추대하여 총회의 인준을 거치는데, 신달자 시인이 회장으로 선출되어 인사말씀이 있었고, 김종길 시인의 격려사가 있었다. 사무총장은 김유선 시인이 맡게 되었고, 이어 감사 선출로 들어가 김지헌 시인과 박무웅 시인이 감사를 맡게 되었다.

  이로써 모든 행사가 끝이 났다. 그런데 한 가지 유감(有感)이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정기총회 행사가 끝나면 항상 뒷풀이가 있어서 준비된 음식을 들면서 정담을 나누며 화기애애(和氣靄靄)한 분위기로 친목을 다져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뒷풀이 자리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하여 참석했던 모든 회원들이 허전한 발걸음으로 귀가할 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냥 귀가하기가 뭣한 회원들은 서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인근 식당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결국 필자도 몇몇 얼굴을 아는 회원들과 삼삼오오 어울러 인근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지만, 그러나 멀리 지방에서 올라온 회원이거나 또는 모처럼 행사에 첫 발걸음을 한 회원들은 안면식(顔面識)도 없어 어울리지 못하고 서먹한 마음으로 그냥 귀가 했을 것이다. 그런 회원들 몇몇을 필자의 눈으로도 직접 목격했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한국시인협회가 사단법인이라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회원들의 연회비로 운영되는 친목단체이다. 따라서 회원들의 친목을 가장 기본으로 생각하며 우선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열심히 사업만 많이 벌이는 것이 능사(能事)는 아니며 잘하는 일이라고 무조건 박수만 칠 수는 없다. 사업을 많이 벌이고 여러 가지 행사를 자주 치르는 것도 결국은 회원들의 돈독한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서 아니겠는가. 물론 매번 행사마다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회원들이야 아무러면 어떻느냐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이번 총회에 참석한 회원들 중에는 행사 때마다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석한 회원들도 많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하여 참석치 못하다가 모처럼 시간을 내어 첫걸음을 한 회원도 있을 것이다. 또한 멀리 지방에서 귀중한 시간과 경비를 들여 참석한 회원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회원들은 회원들 간에 안면식도 없을 것이고, 그리하여 매우 서먹서먹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행사를 치른 다음에는 뒷풀이 자리를 마련하여 함께 음식을 들면서 안면도 익히고 정담을 나누며 친목을 다지는 시간을 줘야 할 것이다.
  한국시인협회 회원이 1,000명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름만 걸어놓고 연회비도 납부하지 않는 회원들이야 거론할 가치도 이유도 물론 없다. 그렇지만 결산보고서의 항목별 수입내역을 살펴보면, 착실하게 연회비를 납부한 회원이 535명으로 나와 있다. 이 회원이 모두 행사 때마다 반드시 참석하지는 않는다. 꼭꼭 참석한 회원들도 있을 테고, 몇 번이든 여러 번 참석한 회원도 있을 것이지만, 처음으로 단 한 번 총회에 참석한 회원도 있을 것이며, 아예 참석조차 못하거나 하지 않은 회원들도 있을 것이다. 정기총회에 참석하는 회원은 기껏해야 100~200명 정도이다. 어떠한 행사이든 간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거나 못한 회원들이야 언급할 필요가 없겠지만, 다른 행사에는 몰라도 정기총회만큼은 꼭 참석하는 회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회원들에게 빈 걸음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것은 이해와 납득이 가지 않는다. 회원이 납부하는 연회비의 의무와 권리를, 일 년에 한 번 발간하는, 자기의 작품이 단 한 편밖에 실리지 않는, 사화집 한 권으로 만족하라는 얘기밖에 더 되겠는가.
  일반회계 결산보고서를 살펴보면, 차기이월금이 430여만 원이나 된다. 여기에서 대략 100만 원정도만이라도 총회의 뒷풀이 행사비로 집행한다면 이렇게 허전하고 씁쓸한 마음으로 귀가하지 않고 서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정담을 나누며 친목을 다질 수 있었을 것이다.
  여느 다른 행사들이야 참가회원들의 참가비와 사업지원 수입금, 기타 찬조금 등을 합하여 행사를 치러왔으니 언급할 이유가 없지만, 지금껏 정기총회의 뒷풀이 행사비만큼은 일반회계에서 정식으로 예산집행을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행사비만큼은 전임회장이 정식으로 집행하고 난 후에 그 나머지 잔액을 신임회장단 측에 차기이월금으로 넘겨주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필자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필자와 함께 동행하여 인근 식당으로 향하여 자리 잡고 식사를 한 회원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들이다. 뿐만 아니라 끼리끼리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다른 식당으로 향한 회원들도 필자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여기에 '한국시인협회상' 심사평과 수상시인의 시집 표제작품을 함께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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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회 한국시인협회상]

 

계란을 생각하며



유   안   진
<시집「둥근 세모꼴」>





밤중에 일어나 멍하니 앉아 있다

남이 나를 헤아리면 비판이 되지만
내가 나를 헤아리면 성찰이 되지

남이 터뜨려주면 프라이감이 되지만
나 스스로 터뜨리면 병아리가 되지

환골탈태(換骨奪胎)란 그런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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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본질 생성의 개체성'과 '존재의 시원적 리듬'에 주목

  '한국시인협회'는 올곧게 이어 내려온 시적 정신을 바탕으로, 존재와 일상과 같은 시대정신을 표현하고 구현해왔다. 현실의 다양한 경험과 미래의 공허 속에서, 세계에 잔존하고 있는 불안의 징후와 주체의 무력감에 저항하며 그것을 넘어서고자 했다. 특히, 현실에 가득 차 있는 다양한 서정과 간극을 시적 본질에 담고자, 동시대적 인식과 실천을 요구하고자 했다. 이런 이유로, '한국시인협회상'은 그간 삶과 주체를 위협하는 타자적인 것들과 저항하며 이를 詩 속에 담아내려는 시적 열정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왔다.
  이에, 본심 심사위원들은 2012년 1월 13일(수) 오후 2시 협회 사무실에 모여 예심을 거쳐 온 본상 후보 시집 십여 권과 '젊은시인상' 후보 시집 열  권을 대상으로 집중 토의에 들어갔다. 먼저, 본상 후보를 대상으로 투표한 결과 다수표를 얻은 유안진 시인과 최동호 시인으로 압축되었다. 이 두 시인을 대상으로 투표한 결과 다수표를 얻은 유안진 시인이 최종 선정되었다. 유안진 시인은 1965년《현대문학》에 詩가 추천되어 작품활동을 한 이래 박제된 현실에 숨결을 불어넣어 삶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보편적 진실과 우주적 운명 속에서 개체성을 초월하고자 하는, '내면의 확장성'과 '생성의 체현성'에 주목해온 것이 높이 평가되었다. 이어 진행된 '젊은시인상'은, 죽음과 도시의 사육제 의식을 그려내고 있는 조동범의「카니발」과, 무한에 대고자 상상력과 언어에 대한 필사의 계책을 통해 존재의 시원적 리듬을 환기시키고 있다는 이재훈의「명왕성 되다」가 경합을 벌인 끝에 이재훈 시인이 영예를 안았다.
  상은 그간 노력해온 헌신에 대한 보상이자, 자기 보존의 욕구에 대한 타자의 기원적 성격을 띤다. '한국시인협회상' 역시 자신 속에서 자신을 들여다보며, '—되기'와 '—하기'에 천착하는 거울로서의 현실—詩—존재의 성격을 띤다. 면연히 이어온 '한국시인협회상'은 앞으로도 詩 속에 자신을 구성하는 시적 가역(苛役)에 관심을 두고 열정에 값하고자 한다.


심사위원장 : 신달자
심사위원 : 나태주, 허형만, 한영옥, 박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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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무거운 무게감



유   안   진


  먼저 감사합니다. 예심과 본심에서 저의 작품집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예심위원들은 아직도 모르지만, 발표된 심사위원들 명단을 보고서야 더욱 우정과 동정, 감사와 미안, 황송과 죄송이라는 3중의 무게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런 느낌은 저의 사람됨이 착해서나 겸손해서가 아니라, 이때껏 수상자들께서 작품성에서 늘 저보다 더 좋은 작품을 쓰는 시인들이셨고, 연령이나 등단연도에서도 저보다는 항상 젊은 시인들이어서, 시협상에 대한 기대가 언제부턴가 저절로 접히게 되더라는 뜻입니다. 비단 이 상만이 아니라 세상사에서 저절로 조금씩 때로는 상당히 자유로워지게 되었다고 해야 정직할 것입니다.
  철부지 20대 전반에 등단하여 금년이 등단 48년째나 되고, 세상나이도 70을 한두 해나 넘게 되면서 저절로 그런 자유로움이 누려지게 되더라는 뜻입니다. 대신에 병원출입이나 덜 했으면 하는 바램이 더 직접적인 발등의 불덩이가 되어서 그렇게 되어버린 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누가 들어도 하품할 나이라는 것이, 세상일은 섭리에 의해서라는 가르침으로 그리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앞서 말씀드린 대로 발표된 심사위원 명단에서 직감으로 오는 것은 우정과 동정의 무게였습니다. 따라서 시집내자 한다고 15권씩 신작시집을 만들어낸 저 때문에 심사에서 얼마나 괴로우셨겠나, 솔직히 감사보다 죄송이 앞선 듯도 했습니다. 먼저 감사하다는 예의는 차리면서도, 솔직히 죄송하고 민망하기 짝이 없기도 합니다.「둥근 세모꼴」이라는 수상시집 이름처럼 이상(理想)과 世相(世上)처럼 말입니다.
  또한 이 상에 기대를 거는 젊은 시인들의 몫을 가로챈 듯도 하여, 후배시인들에게 미안하고 민망스러워지더라는 말도 저의 정직입니다. 누구에게나 부담이나 피해를 주고 싶지 않듯이 저도 마찬가지, 가로 늦게 꼭 그런 짓도 해버린 듯 생각되어, 주시려거든 더 일찍 주실 일이지 하고, 하늘에다 대고 중얼거리고 싶어지기도 했습니다.
  시집을 낼 때마다, 새로움이라는 다름과 차이를 만들고 싶어서, 물론 스스로 달라지고 싶어서, 신작시를 신작시답게 쓰고 싶어서, 짧았다가 길었다가, 거짓말로 참말하는 우리의 생활언어기법인 반어법을 차용해보며, 변화와 실험이라는 명분으로 그런 변덕과 자유로움을 누리고 즐기고 싶었는데, 과분한 상을 받으니 꼭 그런 변덕부림의 자유로움에서는 조금 손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훗날, 시협상을 받은 자가 저런 詩를 쓰다니? 하는 비판을 받을까봐서 하는 말입니다.
  우리 문단에 여러 상이 있지만, '한국시인협회' 이름의 오랜 역사를 전통을 이룩해온 이 상은, 시인이면 모두가 받고 싶어하는 영예로운 상이라고 생각해 왔고, 저도 그러했습니다만, 받고 싶다고 받는 상은 아니어서, 언젠가부터는 아무래도 자격미달이라는 생각에다, 인연이 없다는 생각까지 들어, 한참 전부터 무척 자유로워지게 되었는데—. 이 말은 앞서 드린 말씀대로 저의 겸손이나 분수를 아는 사람됨으로서가 아니라, 세상일과 섭리라는 관계를 수용하게 됨으로써, 그리되더라는 말입니다. 왜 이렇게 많은 것을 섭리에 맡기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렇게 뒤늦게 이 상을 받게 됨으로서, 이 상의 무거움과 심사위원들의 우정과 동정의 무게를 가르쳐 주는 듯, 다시 감사와 미안이, 황송과 죄송이, 우정과 동정의 무게를 더 무겁게 합니다. 그럼에도 감사합니다.





♦ 유안진
   ▪ 경북 안동 출생.
   ▪ 1965년《현대문학》에 박목월 시인 추천으로 등단.
   ▪ 시집 :「달하」「다보탑을 줍다」「거짓말로 참말하기」외 다수.
   ▪ 수필집 :「우리를 영원케 하는 것은」「축복을 웃도는 것」.
   ▪ 장편소설 :「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땡삐」.
   ▪ 논문집 :「한국의 전통 육아방식」외 다수.
   ▪ 한국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월탄문학상, 유심작품상, 이형기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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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젊은시인상]

 

 명왕성 되다



이   재   훈
<시집「명왕성 되다」>



  아무도 모르는 그곳에 가고 싶다면, 지하철 2호선의 문이 닫힐 때 눈을 감으면 된다. 그러면 어둠이 긴 불빛을 뱉어낸다. 눈 밑이 서늘해졌다 밝아진다. 어딘가 당도할 거처를 찾는 시간. 철컥철컥 계기판도 없이 소리만 있는 시간. 나는 이 도시의 첩자였을까. 아니면 그냥 먼지였을까. 끝도 없고, 새로운 문만 자꾸 열리는 도시의 生. 잊혀진 얼굴들을 하나씩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풍경은 서서히 물드는 것. 그리운 얼굴이 푸른 멍으로 잠시 물들다 노란 불꽃으로 사라진다. 나는 단조의 노래를 듣는다. 끊임없이 사각거리는 기계음 소리. 단추 하나만 흐트러져도 완전히 망가지는 내 사랑은, 저 바퀴일까. 폭풍도 만나지 않은 채, 이런 리듬에 맞춰 춤추고 싶지 않다. 내 입술과 몸에도 푸른 멍자국이 핀다. 아무리 하품을 해도 피로하다. 지금까지의 시간들은 모두 신성한 모험이었다는 거짓된 소문들. 내 속의 거대한 허무로 걸어 들어갈 자신이 없다. 지하철 2호선의 문이 활짝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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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가장 낮은 자세로 사람들을 보며


이   재   훈


  구정 설날 귀성을 준비하며 들뜬 마음이었을 때 뜻밖의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큰 선물을 안고 부모님과 가족들을 만나러 간다고 생각하니 더 감회가 벅차올랐습니다. 늘 축하의 박수를 보내는 자리에만 있다가 막상 축하의 당사자가 되어보니 참 부끄러웠습니다. 제겐 이 상이, '한국시인협회'에서 수여하는 '젊은시인상'이 첫 문학상이 되는 셈입니다.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문학을 하면서 이런 영위(榮位)의 단상에 단 한 번도 올라선 적이 없었습니다. 詩는 제가 스스로 무대에 올린 부조리한 일인극처럼 생각했습니다. 때론 스스로 대견해하며 우쭐대기도 했고, 때론 비참하게 망가진 제 자신을 짓밟기도 했습니다. 분칠한 얼굴이 눈물로 얼룩지거나, 너무도 당당히 깔깔 웃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詩는 늘 제 피부의 솜털처럼 보이지 않게 저의 일부로 살았습니다. 스물일곱부터 시인이라는 호칭을 얻어 지금까지 詩를 쓰는 척 행세하며 살았습니다. 스물과 서른을 넘어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의 시간을 돌이켜 보면, 저는 詩를 빼고는 아무 것도 말할 수 없는 삶이 되었습니다. 詩를 빼고는 아무 것도 잘할 수 있는 게 없기에, 詩를 쓰는 게 제 운명인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눌변(訥辯)의 詩를 쓰는 제가 이런 상을 받게 된 것은 미련했기 때문입니다. 아마 앞으로도 이런 미련한 일편단심의 시간들을 살아내지 싶습니다.
  제게 더 미련한 詩의 삶을 이어가라고 격려해주시고, 관심 가져 주신 여러 선생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가장 낮은 자세로 사람들을 보며, 가장 높은 우주를 보겠습니다. 또한 詩를 살겠습니다. 시인이 희화화(戱畵化)되는 이 시대에 시인으로서의 자존을 지키며 오로지 살아내겠습니다.
  태양계에서 퇴출된 명왕성은 우리 가슴에 남아 가장 환한 빛을 내고 있습니다. 그 사실의 증거가 되겠습니다.



♦ 이재훈
   ▪ 1972년 강원도 영월 출생.
   ▪ 1998년《현대시》로 등단.
   ▪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명왕성 되다」.
   ▪ 저서 :「현대시와 허무의식」「딜레마의 시학」.
   ▪ 대담집 :「나는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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