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인협회

2012 한국시인협회 거창 정기 세미나

청수거사 석당 2012. 11. 7. 11:11

 




2012 한국시인협회 거창 정기 세미나


  가을 하늘이 참 맑고 높푸르다. 올해는 다른 해와는 달리 전국 방방곡곡에 단풍이 아주 멋지게 곱게도 물이 들어 아름답다고 매스컴에서도 여러 번 강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중부지방에서는 단풍이 지고 낙엽으로 내려앉아 나목(裸木)만 늦가을 찬바람에 쓸쓸히 서있는 반면, 남쪽지방에서는 이제야 단풍이 한창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이렇게 좋은 가을에 한국시인협회에서는 2012년도 정기 세미나 행사를 1박2일 경상남도 거창(居昌)에서 실시하기로 했다. 한국시인협회 신임회장 신달자 시인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필자도 모처럼 즐겁고 기분 좋고 상쾌한 나들이를 했다.
  거창은 남쪽으로는 ‘가야산’, 북쪽으로는 ‘덕유산’, 서쪽으로는 ‘지리산’이라는 국립공원의 큰 산이 둘러싸고 있는 분지(盆地)로서 너른 들판을 자랑한다. 관광지로서는 별 특별한 매리트가 없어 관광객들이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 지역으로 필자도 가야산을 갈 때 잠시 들러 식사나 하고 갈 정도의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다만 인근에 ‘수승대(搜勝臺)’라는 명승지(名勝地)가 있어 거창군에서 관광지로 개발하여 활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관광객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다행히도 ‘거창사과’와 ‘거창한우(韓牛)’, 그리고 ‘거창막걸리’가 유명하여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거창이 지난날 우리 역사에서 뼈아픈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불행한 고장이기도 하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6‧25 한국전쟁 당시 북진하는 우리 국군에 의하여 720여명이나 되는 무고한 양민(良民)들이 북한의 인민군에게 복역(僕役)했다는 이유로 집단학살(集團虐殺)된 비참하고 한(恨) 맺힌 서글픈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고장이다.

 

  각설(却說)하고, 한국시인협회 거창 세미나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필자를 비롯한 우리 회원들은 2012년 11월 3일 토요일 오전 08:00시에 서울 종로구 운현궁 앞에서 모였다. 서로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3대의 관광버스에 나누어 타고 오전 08:30분에 출발했다. 날씨는 눈부시게 화창했다. 하늘은 드높게 푸르고 맑았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창밖은 노란 은행잎과 산국, 하얀 억새가 가을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도로가 많이 막혀 지체되고 있었다. 중부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단풍을 남쪽에서 볼 수 있는 남쪽지방의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단풍철이다 보니, 남쪽으로 떠나는 행락객들이 넘쳐나는데다가 더욱이 주말이라서 고속도로는 수많은 차량들로 인해 엄청 밀리고 있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같은 거리에도 평소보다 배 이상의 시간이 걸리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처음 계획의 일정표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낮 12:30분경에야 인삼랜드휴게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휴게소의 한식당에서 부랴부랴 점심식사를 마치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 후, 오후 13:00시에 다시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도로의 지체현상으로 예정보다 늦은 14:30분경에 거창에 도착했다. 거창박물관 앞에 도착하니, 거창에 거주하는 회원들과 대구를 비롯하여 경북과 경남에 거주하는 시인들이 현지에 미리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서울에서 버스로 떠난 회원들과 현지에서 합류한 회원들까지 약 150여명이 모인 셈이었다.

 

  일정표보다 시간이 늦어져 행사의 진행에 가속도를 내야 했다. 곧바로 ‘거창박물관’을 관람했다. 박물관에는 우리나라 고대 선사시대에서부터 삼국시대와 고려‧조선시대를 거쳐 근현대까지의 거창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설명 자료와 거창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해 놓고 있었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약 40분간의 관람 시간을 가졌다.
  박물관의 관람을 마치자마자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는 경상남도립 ‘거창대학’으로 세미나 행사를 위해 급히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거창대학’은 ‘거창박물관’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거창대학’의 다목적홀에서 오후 15:30분부터 세미나 행사를 시작했다.
  제1부의 행사는 한국시인협회 김유선 사무총장의 사회로 먼저 미리 준비된 축하공연을 관람하는 것으로 진행하였다. 축하공연은 판소리 채수정 명창이 우리나라 여러 지방의 ‘아리랑’을 간단한 설명을 곁들이며 판소리로 불러주었고, 뒤 이어 채수정 명창의 제자들이 가야금 병창으로 ‘아리랑’을 민요로 불러주었으며, 마지막으로는 채수정 명창과 제자들이 함께 가야금 병창으로 마무리해주었다.
  축하공연이 끝난 다음, 특별 詩낭송으로 신경림 시인이 <낙타>를, 시인협회의 김종철 심의위원장이 신중신 시인의 詩 <내 이렇게 살다가>를 낭송했다. 신경림 시인은 한국시인협회의 회원은 아니지만 시인협회의 평의회에서 추대하여 오랫동안 고문을 맡아오고 있는데, 이번 행사에 특별 초대시인으로 모신 것이다. 그리고 신중신 시인은 거창 출신의 시인으로 거창에서 가지는 세미나 행사를 기념하는 뜻에서 시인의 詩를 김종철 심의위원장이 대신하여 특별 詩낭송을 하게 된 것이다.
  특별 詩낭송이 끝나고, 신달자 회장의 인사말씀이 있었으며, 이어 이홍기 거창군수와 거창에 거주하고 있는 표성흠 시인의 환영사가 있었다. 그리고 김종길 원로시인께서 이번 행사의 축사를 해주셨다. 이홍기 거창군수는 모습도 핸섬하였지만 환영사의 말씀도 위트와 유머가 넘치는 달변이었다. 또한 마지막으로 이번 세미나 행사에 지원을 해주신 이홍기 거창군수와 서석만 경남은행 거창지점장께 감사패를 전달하는 것으로 제1부 행사를 마쳤다.

 

  시간이 많이 늦어졌으므로 휴식시간 없이 곧바로 제2부 행사로 들어갔다. 제2부 행사는 학술 세미나와 회원 詩낭송이었다. 학술 세미나의 주제는 “아리랑, 詩의 모태(母胎)인가?”이다. 제2부 행사는 시인협회 김병호 사무차장의 사회로 진행하였는데, 먼저 예술원 회원으로 연세대학교 석좌교수이신 유종호 문학평론가께서 <‘아리랑’에 부쳐>라는 제목으로 기조강연을 해주셨다.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국화(國花)인 ‘무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반면에 ‘개나리’와 ‘진달래’ 같은 꽃을 더 좋아하듯이 음악도 ‘애국가’보다 ‘아리랑’을 더 좋아한다면서,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마음과 정신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원한(怨恨)’이 아닌 ‘한(恨)’의 노래이며, 그러므로 별도로 언제 어디서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며, 앞으로도 후세의 젊은 세대들에게까지도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 깊은 호소력을 지니는 노래라면서, 아울러 김소월의 詩가 ‘아리랑’과 같은 맥락을 함께하기 때문에 똑같이 깊은 호소력을 지녔다고 생각한다며, ‘아리랑’의 가락과 김소월의 詩를 비교해가며 언급해주었다. 또한 아울러 김소운이 1930대에 수집하여 처음 일본에서 간행한《조선구전민요집》에 실려 있는 우리나라 여러 지방의 ‘아리랑’을 소개하였으며, ‘아리랑’의 어원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언급해주셨다.

 

  유종호 평론가의 기조강연이 끝난 다음, 먼저 서강대 국문과 교수 김승희 시인이 <‘아리랑’의 정신분석 : ‘아리랑’은 상실에서 시작되었다>라는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해주었다. 김승희 시인은 학술논문대회에서 발표한 논문의 내용을 간추렸다면서, ‘아리랑’은 상실과 박탈의 트라우마에서 시작되었다고 강조하고는 애도(哀悼)의 노래, 우울증의 노래, 열락(悅樂)의 노래로 크게 구분된다고 하였다. 애도의 노래는 ‘본조아리랑’을 대표로 하는데 집착과 상실뿐만 아니라 자연, 회피, 위협에 대한 반응을 리비도로 치환하고 생의 에너지로 전환하여 상실을 부정하고 비통한 슬픔을 우주적 법칙으로 승화시키며 결국엔 상실을 이겨내고 죽음충동에 대하여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자기방어의 욕망을 보여주기도 하며, 또 한편으로는 상실을 대자연의 이치에 의탁하여 자기무화(自己無化)와 체념으로 상실을 합리화하고자 애쓰는 전략을 보여준다고 하였다.
  우울증의 노래는 ‘강원도아리랑’과 ‘정선아리랑’을 대표로 하는데 대자연의 이치와 엇갈린 단절과 황폐한 우울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방향으로 나아가 상실된 대상에 대한 우울증적 공격성, 파괴적 자기비하, 부정적 나르시시즘, 마조히즘, 자기학대 등의 멜랑콜리의 특성을 강하게 보여준다고 하였다.
  열락의 노래는 ‘밀양아리랑’과 ‘진도아리랑’을 대표로 하는데 가부장제 사회에서 금기시 되어온 시어머니에 대한 비하와 욕설, 능동적 여성적 섹슈얼리티의 발현, 젠더의 개념을 전복(顚覆)하는 육체의 쾌락과 열락의 향유 등이 노골적으로 유희(遊戱)화 되어 나타난다고 하였다.
  김승희 시인의 주제 발표가 끝나고, 두 번째로 서울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숭원 문학평론가께서 <‘아리랑’의 시적 요소>라는 제목으로 주제 발표를 해주었다. 이숭원 평론가는 우리나라 각 지방의 ‘아리랑’ 가사의 의미와 유형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언어의 유희, 해학, 외설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현대시를 쓸 때에 어떻게 반영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어 주었다.
  마지막으로 주제 발표에 나선 신승일 시인은 거창에 거주하는 시인으로서 <‘아리랑’의 서사에 따른 속성 변화>라는 제목하에 거창 지역을 중심으로 한 ‘아리랑’을 소개하고, 또 거창지역을 중심으로 한 현대시인들의 작품 속에 표현되거나 표출되어 있는 ‘아리랑’에 대하여 다루어 주었다. 특히 ‘아리랑’이 민중의 노래로서 드러나는 사회성, 일상 삶의 노래로서 드러나는 다양성 등을 현대시 작품 속에 어떻게 투영되고 반영되어 나타나는가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어 설명해주었다.

 

  주제 발표가 모두 끝나고, 질의응답의 토론시간이 주어졌는데 박현수 시인과 장옥관 시인과 김제욱 시인이 질의에 나섰다. 박현수 시인은, 김승희 시인의 주제 발표 내용에 대하여 질의했는데, ‘아리랑’을 애도의 노래, 우울증의 노래, 열락의 노래로 구분한 그 경계가 애매모호한 것이 아닌가 물으면서 그 기준점이 무엇인가를 설명해달라고 하였다. 이에 김승희 시인은, 다소 부족한 면이 있기는 한데 그 점에 대하여는 앞으로 좀 더 연구를 계속해야겠다면서 ‘아리랑’의 가사에서 나타내 보이고 있는 내용에서도 참조하였지만 후렴구를 주요 근거로 기준을 삼았다고 답변해 주었다. 장옥관 시인은, 이숭원 평론가에게 질의를 하였는데, ‘아리랑’의 가사에서 보이는 언어의 유희와 해학과 외설이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시적 자양으로 활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해달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이숭원 평론가는, 날이 갈수록 산문화 되어가는 현대시 창작 유행의 문제가 심각하다면서 ‘아리랑’이 보여주는 언어의 유희와 가락이 현대시의 창작에 절실히 반영되어야 할 필요한 요소라고 강조하며 답변하였다. 그리고 김제욱 시인은, 신승일 시인에게 질의하였는데 ‘아리랑’의 사회성과 다양성이 지금까지의 현대시 작품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에 대하여 다루어준 한계성이 있다면서,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투영되고 반영되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신승일 시인은, 지금까지는 현대시 작품 속에서 각각 따로이거나 또는 복합적으로 투영되어 나타나고 있지만, 앞으로는 복합적임을 넘어 융합적으로 투영되어 나타날 것이라고 답변해주었다.
  주제 발표와 토론이 모두 끝나고, 시인의 詩낭송으로 이어졌다. 문인수 시인이 <땅끝>을, 유홍준 시인이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 염민기 시인이 <소읍연대기>, 이상이 시인이 <계단 피아노>를 낭송하였다.

 

  오후 18:00시에 모든 행사가 끝이 났다.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거창한우’로 유명한 고장답게 한식당 ‘한우펠리스’에서 서로 만난 기쁨과 함께 즐거운 정담을 나누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부위별 한우 숯불구이 뷔페로 음주(飮酒)를 곁들이며 저녁식사를 하였다. 밤 20:30분경 저녁 만찬을 끝내고, 숙소인 ‘거창관광호텔’로 이동하여 숙소 배정을 받았다. 그리고는 회원들 저마다의 개인적인 자유시간을 가졌다.
  숙소에서의 밤의 잠자리가 불편했다. ‘거창관광호텔’은 오래된 낡은 건물로서 시설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요가 얇아 등과 엉덩이가 배기는데다가 온돌방이 너무 뜨거워 이불을 덮으면 갑갑하고, 이불을 차버리면 우풍이 있어 추웠으므로 사고후유증으로 시달리는 필자는 다리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더군다나 오른쪽 팔다리가 밤새도록 저리는 통증이 계속되어 밤새 팔다리를 주무르며 이리저리 뒤척여야 했다. 밤이 참 길었다. 어서 아침이 왔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렇게 뒤척이다가 7언절구 한시 한 편을 얻었다.

於居昌


居昌闊野渺霞空
强見附會無入瞳
莫也勿也自置然
旣知復來我誤痛


<거창에서>



거창의 너른 들판
아득히 안개만 잔뜩 끼어,
무언가 보려고 억지로 갖다 붙여도
볼 게 아무것도 없네.
아서라 말어라 그냥 두어라!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또 찾아온
나의 뼈아픈 잘못인 것을.


  이튿날, 11월 4일의 아침이 밝았다. 해맑은 햇살이 가을 아침의 상쾌한 공기를 엎고 들어와 비추고 있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아침산책도 하며 자유시간을 보내다가 오전 08:00시에 호텔 4층의 한식당에서 ‘북어해장국’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아침 식사 후에도 자유시간을 즐겼다.

 

  오전 09:30분경에 다음 일정을 위해 호텔을 나와 다시 버스로 출발했다. 한참을 이동하여 오전 10:00시경에 ‘거창양민학살사건피해자추모공원’에 도착했다. 지난날 6‧25 한국전쟁 당시 북진하는 우리 국군에 의하여 720여명이나 되는 무고한 양민(良民)들이 북한의 인민군에게 복역(僕役)했다는 이유로 집단학살(集團虐殺)된 피해자들의 비참하고 한(恨) 맺힌 영혼을 위로하고자 사당을 지어 위패(位牌)를 모시고 공원을 조성하여 추모객을 맞는 곳이다.
  ‘추모공원’에서는 마침 추모제가 열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위령탑 앞에서 묵념을 올리고, 추모제위원회의 회장으로부터 학살사건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공원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국화꽃의 향기 속에서 우리 민족의 뼈아픈 역사를 되새기며 애도(哀悼)의 시간을 가졌다. 하늘도 슬픈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비참하게 희생을 당해야 했던 슬픈 영혼의 마음을 헤아리는지 햇살이 구름 속으로 숨어들고는 점점 뿌옇게 흐려지고 있었다.
  오전 10:40분에 ‘추모공원’을 나와 다시 버스로 이동하여 거창읍내를 거쳐 ‘수승대(搜勝臺)’로 향했다. 일기예보대로 비가 오려는지 하늘은 점점 더 회색빛으로 무겁게 내려앉고 있었다. 약 50분을 달려 마침내 ‘수승대(搜勝臺)’에 도착하였다.
  ‘수승대(搜勝臺)’는 명승 제53호로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890번지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처음에는 삼국시대에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로서 사신을 근심스럽게 송별하는 곳이라 하여 ‘수송대(愁送臺)’라고 불렀다. 그러나 조선시대 중기 16세기에 퇴계 이황 선생이 이곳에 들렀다가 계곡의 아름다운 경치에 감탄하여 ‘수송대(愁送臺)’라는 슬픈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며 빼어난 경치에 걸맞는 이름으로 ‘수승대(搜勝臺)’라고 고치고는 개명(改名)한 한시를 지어 사람들에게 돌린 것이 계기가 되어 현재의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우리 일행은 ‘구연서원(龜淵書院)’의 입구 ‘관수루(觀水樓)’ 앞에서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는 ‘수승대(搜勝臺)’ 거북바위와 유형문화재 제423호인 ‘요수정(樂水亭)을 둘러보며 단풍으로 짙게 물든 가을계곡의 자연정취에 흠뻑 젖었다. 수승대의 명물 거북바위는 커다란 바위가 계곡의 중간에 떠 있는 모습이 마치 거북이처럼 보이는데 세월의 아픔을 견뎌낸 소나무들이 바위 위의 곳곳에 자라고 있었다. 바위의 둘레에는 퇴계 이황 선생이 ‘수승대(搜勝臺)’라고 개명한 5언율시를 비롯하여 수많은 풍류객들의 글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정오에 ‘수승대(搜勝臺)’의 관람을 마치고 나와 인근 관광단지 안에 위치하고 있는 한식당에서 ‘두부전골’로 점심식사를 했다. 음식이 깔끔하고 담백하며 맛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오니, 일기예보대로 하늘에서는 비를 흩뿌리고 있었다.
  잠시의 휴식을 취한 뒤, 서울 상행길이 많이 막힐 것을 염려하여 오후 13:40분경 서둘러 급히 서울로 귀경길에 올랐다. 차창 밖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밤부터는 많은 비가 온다고 했다. 일찍 출발을 한 터라 고속도로는 막히지 않고 시원스레 뚫려 있었다. 그러나 경기도 안성 부근에서는 많이 막혀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 했다. 안성을 지나자 다시 도로는 시원스레 뚫려 있었다. 죽전에 도착하니 오후 17:00시경, 도로의 정체 현상을 고려하여 일찍 귀경을 서두른 덕에 막히지 않고 쉽게 올라온 것이다. 그러나 서울 톨게이트 지역에서부터 또 많이 막힐 것이라는 판단으로 필자는 죽전에서 일행들과 작별하고 버스를 내렸다.
  분당선 죽전역에서 지하철로 갈아탔다. 선릉역이 종착역이던 분당선은 왕십리역까지 연장 개통됨으로써 강남구청역에서 7호선으로 갈아타면 더욱 일찍 집에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내려 밖으로 나오니 가로등과 네온사인의 불빛이 어두운 밤하늘을 밝히고 있는 가운데 하늘에서는 제법 많은 양의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집에 들어오니 오후 18:00시경, 서둘러 저녁식사를 하고는 피곤한 몸을 일찍 잠자리에 뉘였다. 곤한 잠을 달게 잤다.
  이번 거창의 세미나는 거창시내에서는 별로 볼 것이 없었으나, 대신에 ‘아리랑, 詩의 모태인가?’ 라는 세미나의 주제가 참으로 유익하고 깊은 인상을 남긴 행사였다. 또한 오래 만에 얼굴을 대하는 회원들과 함께 어울러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그 유명한 ‘거창사과’와 ‘거창한우’와 ‘거창막걸리’를 맛볼 수 있는 기쁨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 아울러 ‘수승대(搜勝臺)’의 가을계곡의 정취의 향을 듬뿍 묻어온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나들이가 되었다.

 

※ 제1부 행사의 사회를 보고 있는 한국시인협회 사무총장 김유선 시인.

 

※ 축하공연을 하고 있는 채수정 판소리 명창과 그 제자들.

 

※ 신경림 시인의 특별 詩낭송.

 

※ 김종철 시인의 특별 詩낭송.

 

※ 한국시인협회장 신달자 시인의 인사말씀.

 

※ 이홍기 거창군수의 환영사.

 

※ 거창의 표성흠 시인의 환영사.

 

※ 한국시인협회 김종길 원로시인의 축사.

 

※ 제2부 행사의 사회를 보고 있는 한국시인협회 사무차장 김병호 시인.

 

※ 기조강연을 하고 있는 예술원 회원 유종호 문학평론가.

 

※ 주제발표를 하고 있는 서강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김승희 시인.

 

※ 주제발표를 하고 있는 서울여대 국문학과 교수 이숭원 문학평론가.

 

※ 주제발표를 하고 있는 거창의 신승일 시인.

 

※ 문인수 시인의 詩낭송.

 

※ 유홍준 시인의 詩낭송.

 

※ 염민기 시인의 詩낭송.

 

※ 이상이 시인의 詩낭송.

 

※ 거창박물관 앞에서의 필자.

 

※ 거창대학의 소나무(반송) 앞에서의 필자.

 

※ 거창대학 다목적홀 세미나 행사 안내 현수막 앞에서의 필자.

 

※ 거창 수승대에서의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