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 시집 (7)

여우구슬 굴리기

청수거사 석당 2025. 2. 14. 05:32

▼ 수꽃.



▼ 암꽃과 수꽃.



▼ 열매.

한국의 야생화 시집 제7집 [꽃, 내게로 와서 울었다]



여우구슬 굴리기




끔찍한 전신마비의 몇 백년 장대겨울이 지나갔습니다

그러고도 꽃샘추위 난무하는
한 백년을 또 기다려서야 겨우 봄이 왔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그토록 오래 갇혀 있어야 했던 전설 속에서
하얀 털을 두르고 당당히 걸어나온 구미호,
어떤 나쁜 이별이 그녀를 여우로 갇혀 있게 했을까요

봄이어도 내게는 검은 봄,
태양이 가장 어둡던 어느 날 그녀는
붉게 빛나는 씨앗구슬 하나 들고 환하게 다가왔습니다

비 흠뻑 맞으며
세상에 더 없을 곡진한 사랑으로 마당 풀밭 한가운데에
여우주머니와 나란히 그녀를 심었습니다

뒤늦은 봄인 만큼 재빠르게
줄기 뻗어 가지마다 붉은 꽃등 밝히더니
이내 주렁주렁 검붉은 구슬을 매달아 놓았습니다

내 마당에서 그렇게 구슬 맺는 계절을 사는 동안,
얼마나 바람 불고 비 내렸을까요

주거니 받거니 그녀 입 안에서 내 입 안으로 건네주는 구슬을
가만가만 굴렸습니다

믿음 하나로 목숨 거는 사랑 앞에
나 혼자 살겠다는 이기심으로
천지간의 일을 꿰뚫어보고 싶다는 욕심으로 꿀꺽
차마 구슬을 삼킬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선녀 되어 승천하고자 學童을 홀려 입맞춤하고
넣었다 빼었다 입속에서 입속으로 구슬 굴리는
핑퐁게임으로 氣를 빨던,
전설 속에서처럼 그런 여우 아니었습니다

축제가 사라지는 계절이 늘어나는 세상에서,
생의 마지막 꽃으로 빛나는 축제 펼치고 가기 위해
사랑무덤을 찾아 내게로 온 그녀는,
이미 선녀였습니다

다시 겨울입니다

그녀가 남겨 놓은 오색영롱한 구슬들
여우주머니에 넣어두고 밤마다
홀로 꺼내어 공깃돌처럼 긴긴 밤을 굴립니다

사람으로 살아왔던 여우의 생을 생각합니다

새 봄이면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되뇌어 그립니다




※ 여우구슬 : 대극과의 한해살이풀로 ‘구슬풀’이라고도 부릅니다. 우리나라 제주도를 비롯한 남부지방의 황무지나 묵밭 또는 들과 낮은 산의 풀밭에 자생하는데, ‘여우주머니’처럼 햇볕이 잘 들어오는 양지바르고 메마른 토양을 좋아한다. 여러 식물도감에서는 우리나라의 분포지역을 남부지방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우리주변식물생태도감』에서는 분포지역을 중남부지방으로 설명하고 있다. 키는 높이 30cm까지 자라고 줄기는 곧추서며 녹색이지만 붉은색을 띠고 가지가 갈라진다. 잎은 긴 타원형 또는 거꾸로 된 계란형으로 가지에만 2줄로 나서 깃꼴겹잎처럼 보인다. 잎몸은 끝이 둔하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여우주머니’와 마찬가지로 ‘자귀나무’나 ‘자귀풀’처럼 잎이 낮에는 활짝 펼쳐져 있다가도 밤이면 또는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내리는 날에는 잎을 접어 오므리는 수면운동을 한다. 7~9월에 붉은 갈색의 꽃이 피는데, 암수한그루로 암꽃과 수꽃이 잎겨드랑이에 1개 또는 몇 개씩 모여 달린다. 수꽃은 가지 위쪽의 잎겨드랑이에 2~3개씩 피는데, 꽃받침잎은 6장, 수술은 3개이다. 암꽃은 가지 아래쪽 잎겨드랑이에서 1개씩 피며, 암술은 1개이다. 9~10월에 삭과 열매가 적갈색으로 익는데, 납작한 공 모양으로 옆으로 주름이 지고 겉에 돌기가 있으며, 익으면 3갈래로 갈라져서 씨(종자)가 나온다. 씨(종자)는 옆으로 주름이 진다. 한방에서는 전초(全草) 또는 뿌리가 붙은 전초(全草)를 ‘진주초(珍珠草)’라 하여 약재로 쓴다. ‘여우주머니’와 아주 비슷한데, ‘여우주머니’는 잎이 원줄기는 물론 가지에도 달리고 꽃도 원줄기의 잎겨드랑이는 물론 가지의 잎겨드랑이에서도 피지만, ‘여우구슬’은 잎이 원줄기에는 달리지 않고 꽃도 가지의 잎겨드랑이에서만 피며 원줄기에서는 꽃이 피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고, 열매 또한 ‘여우주머니’는 열매 표면이 매끈하고 열매자루가 있지만, ‘여우구슬’은 열매 표면에 수많은 작은 돌기가 있고 열매자루가 없다는 점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