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야생화 시집 (3) [눈에 들어와 박히면 그게 다 꽃인 것을]
/시/인/의/말/
또 다시 꽃읋 위하여
단기4337년(서기2004년) 7월, 갑자기 내게 다가온 사고는 큰 불행이었다. 중환자실에서 이틀만에 의식이 돌아왔을 때, 전신마비라는 말은 충격이었다. 몸의 장애보다도 "이제 앞으로 詩를 어떻게 쓰나." 그리고 "앞으로 꽃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하는 두 가지 문제가 눈앞을 캄캄하게 하였다.
시골로 내려갔다. 그러나 다친 몸으로 찾은 고향은 나를 반겨주지 않았다. 시골에서의 치료 요양 생활은 그야말로 고통의 연속이었다.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 꽃을 찾으며 詩를 써야겠다는 일념으로 견디어냈다. 그 강한 의지가 1년 6개월만에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시골에 있을 수가 없었다. 반기지 않는 고향은 나를 머물러 있게 하지 못하고 자꾸만 등을 떠밀고 있었다.
단기 4338년(서기 2005년) 12월, 완쾌되지 않은 아픈 몸을 이끌고 상경했다. 다시는 고향에 가지 않으리라. 지금부터 내게 고향은 없다. 지금 내가 몸담고 생활하고 있는 현재의 위치가 고향이다. 그렇게 다짐하며 일을 시작했다.
이 해의 겨울은 유난히 길고 추웠다. 봄을 몹시 그리워하며 기다렸으나, 봄은 그렇게 쉽게 오질 않았다. 봄인가 싶으면 영하로 떨어지는 강추위가 꽃샘추위라는 이름으로 다가오는 봄을 시샘하며 발목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꽃 피는 봄이 온다는 것과, 봄이 오면 낮은 산에는 오를 수 있으리라는 믿음과 희망이 나를 꼿꼿하게 붙잡아 주었다.
봄이 왔다. 그러나 낮은 산에는 오를 수 있으리라는 믿음과는 달리 여태껏 산에는 오르지 못하고 있다. 높은 산에서 피는 꽃들이 몹시도 보고 싶다. 그 꽃들도 나를 몹시 기다리고 있을 것이 분명한데, 언제쯤이어야 산에 오를 수 있을까.
산에 피는 꽃이여! 외롭고 그리운 정을 너무 탓하지 말게나.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언제나 함께하고 있나니. 세월이 흐르면 언젠가는 산에도 오를 수 있으리라. 그 때는 산에 피는 꽃들도 만날 수 있으리라. 내 몸속에선 여전히 믿음과 희망이 꿈틀거리고 있다.
사고를 당하고 치료와 요양생활을 하면서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과 "정신이 건강해야 육체도 건강해진다."는 말을 절실히 체험했다. 밤마다 팔다리의 근육과 신경이 오그라들며 엄습해 오는 극심한 통증은 참담한 고통이었다. 자꾸만 주저앉고 싶은 허물어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그렇게 보낸 1년 6개월, 하찮은 풀에서부터 나무에 이르기까지 주위에 보이는 모든 것이 소중하고 고귀한 생명들이었다.
이 때, 꽃과 詩는 내게 있어 유일한 희망이며 위안이었고 벗이었다. 그렇게 아픔을 참아내며 틈틈이 써낸 들꽃의 詩 100편을 한데 모았다. 여기에 실린 100편의 야생화 詩는 1년 6개월 동안 시골에서 치료 요양 생활을 하며 쓴 시편들이다. 다친 몸으로 산을 오를 수 없어, 주로 집과 병원을 오가면서 길가와 집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들꽃을 대상으로 노래한 詩들이다. 이 詩들을 고귀한 생명들에게 바친다.
지금도 치료는 계속하고 있다. 언제쯤이어야 완쾌가 될는지 모른다. 어쩌면 평생 완쾌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만한 것이 천만다행이다. 아직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을 끝내지 못했기에 하늘이 나를 데려가지 않은 모양이다. 앞으로의 남은 인생은 내게 있어 덤이다. 더욱 값지고 알차게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죽도록 사랑하는 詩와 꽃을 위해 남은 인생을 모두 바쳐 온몸으로 더욱 사랑하고 그리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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