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썸네일형 리스트형 병아리풀 한국의 야생화 시집 제7집 [꽃, 내게로 와서 울었다] 병아리풀 화장을 한다는 건, 자기 얼굴 위에 정성스레 편지를 쓰는 일입니다 먼저 바디필링으로 각질 벗겨내고 클렌징크림으로 다시 한 번 닦아낸 다음 스킨과 에멀젼을 塗布하고 나서 그 위에 리프팅 링클세럼으로 또박또박 낱말 받아쓰기하듯 꾹꾹 눌러 쓰면 비로소 편지는 완성됩니다 때때로 상황에 따라 필요에 따라 달리 하는 색조화장은 덤으로 追伸합니다 그렇게 완성된 편지는 봄에게로 배달됩니다 딱딱하게 얼어버린 땅을 봄비가 부드럽게 녹여주고, 봄볕 아래 어미 따라 나들이 나온 병아리떼 뿅뿅뿅 놀고 간 오후, 아유, 예뻐라, 예뻐라! 여기저기 병아리발자국마다 뾰족뾰족 새싹들이 돋아나 자랍니다 편지는 다시 봄에서 여름가을로 배달됩니다 편지 읽으며 쑥쑥 자란 새싹들.. 더보기 참나리 [새싹] [주아(珠芽)] [꽃] [열매] 한국의 야생화 시집 (5) [울어본 자만이 꽃의 웃음을 듣는다] 참나리 땅에서 사는 모든 것들은 하늘을 쳐다보며 산다 푸른 싹 밀어올리며 나도 그랬다 그러나 봄은 짧고 여름은 길었다 쳐다볼수록 고개 아픈 구름으로 뭉쳐진 꿈들은 타는 여름날 허공에서 맴돌다 바람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이제 가을을 맞으며 하늘바라기를 접는다 슬프게 아름다운 것, 아름답게 슬픈 것, 모두 발아래에 있어서 행복한, 빈 몸으로 땅을 내려다본다 겨우겨우 꽃 피었지만 서투른 사랑으로 울던 날이 길었는지 아직 올바른 사랑법을 몰라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얼굴 얼룩으로 찍히는 반점들만 늘어나고 눈물 젖는 꽃잎 자꾸 뒤로 말린다 갈수록 까매지는 몸뚱이 겨드랑이마다 툭툭 불거지는 멍울 가슴을 때린다 그래도.. 더보기 제비난초 자화상 한국의 야생화 시집 (7) [꽃, 내게로 와서 울었다] 제비난초 자화상 오늘도 유월의 숲속에 웅크리고 앉아 거울을 본다 늘 꼿꼿이 곧게 서려고 안간힘 썼지만 절름발이로 평생을 살았다 후천적 신체장애야 괜찮다 괜찮아 등 토닥이는 사랑지기의 무릎을 베고 무위도식 희멀건 얼굴로 향기 흘리며 꽃송이 피울 때마다 박씨 물고 온 흥부의 제비는 못되더라도 선비의 品香을 지키며 제비족은 되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둥지를 틀어야 할 옛 기와집의 처마 사라진 지금 세상은 온통 카바레 콜라텍 나이트클럽 스탠드바 카페뿐, 겉으로는 어울리지도 않게 기품 있는 헛기침으로 울타리를 치고 안으로는 꽃송이 하나하나에 사랑이라는 향긋한 이름으로 여린 가슴 후리는 閑良, 결국은 제비족이었음을 반성한다 속내 들통 났어도 양팔 벌려 아낌없이 .. 더보기 남방바람꽃 만나러 가요 [새싹] [꽃] [열매] 한국의 야생화 시집 (7) [꽃, 내게로 와서 울었다] 남방바람꽃 만나러 가요 바람 바람 바람 바람이 불어와요 꽃 피는 춘삼월 아직 멀리 주차되어 있는데 우수 경칩 이미 지났다고 벌써부터 남쪽에서 바람이 불어와요 살랑살랑 마파람 남실바람 바람이 불어와요 겨우내 꽁꽁 얼어붙었던 가슴이 울렁울렁 녹아내리고 있어요 두 뺨이 발그레 얼굴은 화끈화끈 바람이 났나 봐요 꽃바람 났으니 꽃 찾아 갈까요 남방바람꽃 만나러 지리산으로 갈까요 무등산으로 갈까요 아니 아니 회문산으로 갈까요 아예 멀리 더 멀리 따뜻한 남쪽 제주도 한라산으로 건너갈까요 사랑지기도 같이 가요 함께 가요 남방바람꽃을 만나면 멈춰버린 빙하가 洛山 온천수로 녹아내릴까요 북방으로 옮겨 놓아도 변함없이 남방바람꽃 될까요 북방의 그.. 더보기 序詩 / 꽃, 내게로 와서 울었다 한국의 야생화 시집 (7) [꽃, 내게로 와서 울었다] /序/詩/ 꽃, 내게로 와서 울었다 꽃은 기호학이다 사진으로든 동영상으로든 카메라에 담으면 얼굴 목소리, 마음과 정신은 물론 체취와 입은 옷까지도 모두 숫자 알파벳 특수문자를 조합한 기호로 되어 있다 그림으로든 사진으로든 음악으로든 세상을 인수분해하면 수없이 나열된 기호가 이차삼차방정식과 삼각함수로 뒤엉켜 하나의 소스로 갇혀 있다 그래서 그랬을까 어느 날 문득 내게로 온 당신은 꺼이꺼이 하루 종일 울었다 살려 달라고 죽더라도 부검하지 말고 적분하여 꽃으로 살게 해 달라고, 학교 과학실험실에서 개구리 해부하듯 수학시간 미분을 하듯 세상이 죽으면, 영원히 살지 못하는 기호로 남을까 꽃은 도무지 뜻을 헤아릴 수 없는 기호학이다 더보기 나도수정란풀 한국의 야생화 시집 (6) [꽃이면 된다] 나도수정란풀 여기 부서지기 쉬운 한 사람 서 있다 명예도 무너지고 재산도 산산조각 깨져 흩어지고, 믿어왔던 마지막 건강마저 부서져 내릴까 눈부신 햇살 아래 미소 그윽이 부처로 서지 못하는 커다란 외눈박이 소의 눈망울로 고개 숙이고 있는 그렁그렁 눈물 머금은 얼굴을 보라 돌처럼 나도 단단하다 말로는 당당하지만, 행여 잔소리에 긁힐까 뼈진 말에 금이 갈까 온몸 하얗게 망사 레이스로 커튼을 두르고 하늘 한가운데 수정알로 박히고자 하는 유리창을 보라 슬픔에 갇힌, 산속 나무그늘 밑 달항아리 품은 가슴 하나 서 있다 ※ 나도수정란풀 : 노루발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 각처의 산속 나무 그늘 밑에 자생한다. 엽록소가 없어 광합성 작용을 못하고 썩어가는 낙엽에 뿌리를 내려.. 더보기 2018년 한국시인협회 사화집 [얼굴은 물고기로 가득 차 있다 : 시인의 자화상] ㅇ 시집명 : 2018년 한국시인협회 사화집 ㅇ 제목 : 얼굴은 물고기로 가득 차 있다 : 시인의 자화상 ㅇ 엮은이 : (사)한국시인협회 ㅇ 지은이 : 윤석산 외 ㅇ 발행처 : 세종PNP ㅇ 발행인 : 김병훈 ㅇ 발행일 : 2018. 12. 1. |차|례| 서문 시인들의 자화상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 / 윤석산(한국시인협회장) 004 [ㄱ] 김태준 산이 숨는다 / 012 강세화 자화상 / 013 강애나 자화상 / 014 강영은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 015 강윤순 자화상 / 016 강인한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 017 고경숙 스무 살의 겨울 / 018 고명수 근황(近況) / 019 고영조 관동리 시편 / 020 고 원 나의 ㅅ / 021 고정애 예속(隸屬) / 022 고창수 우주여행 / 0.. 더보기 김의털 한국의 야생화 시집 (6) [꽃이면 된다] 김의털 명함첩을 정리했어 낯선 이름 도무지 기억이 없어 시인이라 표기되어 있는 걸 보면 분명 어느 문학행사에서 받았을 명함일 텐데, 아무리 굴려 봐도 얼굴이 떠오르지 않아 머리에 구멍이 뚫렸어 세 권이 넘는 명함첩 낯선 이름이 아주 많아 더구나 문인이라는 표기도 없이 그저 직장과 직책만 기재되어 있는 건 더욱 더 알 수가 없어 한두 번 만난 사람의 얼굴은 잘 기억하지 못해 젊었을 때부터 유독 그랬어 학교 때 친구도 졸업 후 거리에서 마주치면 종종 알아보지 못해 당황스러웠던 적 한두 번이 아니야 구멍은 세월이 흘러도 좀처럼 메워지지 않았어 오히려 더 커지기만 할 뿐… 그러나 들꽃 이름만큼은 잊지 않아 보잘것없는 꽃, 남들이 잡초라 여기는 풀들도 한 번 보면 그 얼.. 더보기 이전 1 2 3 4 ··· 2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