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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인협회

제55회 한국시인협회 정기총회와 제46회 한국시인협회상 시상식 참관기

제55회 한국시인협회 정기총회와 제46회 한국시인협회상 시상식 참관기


  2014년 3월 22일 오후 16시, 서울의 충무로 남산 밑에 자리한「문학의 집 ‧ 서울」에서 한국시인협회가 주관하는 '제46회 한국시인협회상'과 '제10회 젊은시인상'의 시상식과 아울러 '제55회 정기총회'가 있었다.
  이날 행사는 회원 약150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성대하게 치러졌는데, 먼저 시상식이 있은 다음, 정기총회가 진행되었다.

 

  먼저 김병호 사무차장의 사회로 한국시인협회상 시상식을 거행하였는데, 처음으로 제정된 '한국시인협회 특별상'으로 원로시인 황금찬 선생님께서 수상하였다. 이 '특별상'은 한국시인협회를 위해 평생 헌신하여 오신 90세 이상의 원로시인께 그 공로를 기려 회원들의 마음을 모아 드리는 상이다. 이 상은 지난해에 제45회 한국시인협회상을 수상한 김후란 시인께서 회원들을 대표하여 시상을 해주었다. 그리고 '제46회 한국시인협회상'에는 이근배 시인의 시집「추사를 훔치다」가 수상하였고, '제10회 젊은시인상'에는 윤성택 시인의 시집「감(感)에 관한 사담들」이 수상하였다. 심사위원으로는 김후란 시인, 허영자 시인, 정진규 시인, 김종해 시인, 오세영 시인, 오탁번 시인, 이건청 시인이 맡았는데, 김종해 시인의 심사경위 보고와 심사평 발표가 있었고, 김종길 시인이 축사를 하였으며, 이어 시상식이 있은 다음 수상자들의 수상소감으로 이어졌으며, 후배시인 2명이 나와 수상자의 대표시를 낭송하였다.
  시상식이 끝나고 곧바로 '제55회 정기총회'를 개최하였는데, 김지헌 사무국장의 사회로 진행하였다. 먼저 신달자 회장의 인사말씀이 있었고, 그 다음 김지헌 사무국장의 지난 한해의 사업보고와 박무웅 감사의 2013회계년도의 감사보고가 있었다. 그리고 감사패의 증정이 있은 다음, 앞으로 2년 동안 한국시인협회를 이끌어갈 제39대 신임회장을 선출하였다.

 

  신임회장은 평의회에서 추대하여 총회의 인준을 거치는데 김종철 시인이 선출되어 인사말씀이 있었다.

  이로써 모든 행사를 마치고 만찬 연회로 이어졌는데 미리 마련되어있는 원탁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푸짐한 음식을 앞에 두고 화기애애한 가운데 서로 술잔을 나누며 음식을 들면서 정담을 나누었다. 만찬까지 끝나고도 헤어지기 섭섭한 정은 무리를 지어 인근의 술집으로 찻집으로 자리를 옮겨 밤늦도록 자리를 함께하며 정을 이어 갔다.
  여기에 한국시인협회상  심사평과 수상시인의 시집 표제작품을 함께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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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회 한국시인협회상]








추사(秋史)를 훔치다
— 벼루읽기


이   근   배
<시집「추사(秋史)를 훔치다」(문학수첩, 2013)>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다가
추사(秋史)의 벼루를 보았다
댓잎인가고사리 잎인가
화석무늬가 들어있는
어른 손바닥만 한 남포 오석
돋보기로 들여다보아야
— 다듬고 갈아 군자의 보배로다
   (琢而磨只 君子寶只) 등
깨알 같은 48자 명문(銘文)이 새겨있는
추사가 먹을 갈아 시문을 짓고
행예(行隸)를 쓰던 유품이 아니라면
한 눈에 들어올 것이 없는
그 돌덩이가 내 눈을 얼리고
내 숨을 멎게 한다
어느새 나는 쇠망치로도 깨지 못할
유리 장을 부수고 벼루를 슬쩍?
그랬으면 오죽 좋으련만
못나게도 내 안의 도둑은 오금이 저린다
박물관을 나서는데
— 게 섰거라!
그 작고 검은 돌덩이가 와락
내 뒤통수를 후려친다.





내 말 알아듣는 꽃은 어디?




아직이 아니라 아주이겠지만
세상에는 사람의 말을
알아듣기도 한다는 해어화(解語花)를
나는 만나지 못했다

하기사 이쁘지 않은 꽃이 있으랴만
하도 이쁘면 꺾고 싶지 않은
마음이 어디 있으랴만
내가 말을 걸어도 못들은 체
아예 입조차 봉한 것들에게
조르고 떼를 쓴들 어찌 내 꽃이랴

어느새 눈보라 설레고
내게는 남은 봄도 없으니
다리 절름거리며 길을 나선들
이제 어디 가서 눈 먼 꽃이라도 만나
귀밑머리를 풀어준다?

허긴 어딘가 분명코
있기는 있을 터,
나는 아주가 아니라
아직이라고 하고 싶은
내게 말을 걸어온 그 꽃
이미 지나쳐 온 봄
어디쯤?



※ 해어화(解語花) : 미인. 당 현종이 양귀비를 일컬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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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선비정신의 문향을 품격 높은 정서로 되살려준 언어

 

  이미 문단적으로나 문학적으로 그 성과를 인정받은 이근배의 작품에 대하여 새삼스럽게 심사평이라는 형식을 들어 굳이 왈가왈부 요설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상스러워 보인다. 만시지탄이다. 그의 수상이 한국시인협회상의 권위를 한 단계 더 높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평론가 김병익의 지적처럼 그의 詩들은 “전통이 사라져가는 오늘의 우리 문단에서 선비 정신의 문향을 품격 높은 정서로 되살려준 언어”이자 삶의 한 궁극에서 드디어 만나게 되는 하나의 깨달음 즉 “세상과 사물과 풍경과 말이 공허화(空虛化)하는 데서 울게 되는 크낙한 존재의 설움”이다. 이 이상 더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의 수상에 다만 축하를 드릴 뿐이다.





심사위원 : 김종길, 김후란, 허영자, 정진규
김종해, 오세영, 오탁번, 이건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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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한글동이의 책 가난


이   근   배


  고맙습니다. 詩의 돌팔이로 50년을 넘기고도 아직도 글눈을 뜨지 못하고 있는 제게 호된 꾸지람을 오히려 상으로 바꿔 주신다니 한편 기쁘고 한편 부끄럽습니다. 이 땅의 시인들의 이름으로 주시는 것이며 오늘의 한국시를 일으켜 세운 분들이 앞서서 받은 상이기에 더욱 송구스럽습니다.
  저는 충청도 두메산골에서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광복 다음해인 1946년에 송산국민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교과서도 없이 선생님이 칠판에 백묵으로 쓰는 ᄀᄂᄃᄅ을 배워 훈민정음 창제 이후에 처음으로 우리글 교육을 받은 모국어 원년 세대이며 한글동이임을 긍지로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월시집이며 신간 문학서적들은 구경도 못하고 삼촌이 빌려오는 춘원 등 낡은 어른 소설을 훔쳐 읽는 책가난의 배곯음을 겪어야 했습니다. 지금처럼 책이 넘쳐나지는 않더라도 도회지의 친구들만큼의 독서환경이 주어졌더라면 이렇게 나이 들어서까지 글쓰기의 길을 못 찾고 헤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때 만나지 못한 책, 읽지 못한 글에 대한 목마름에 요즘 저는 헌책방이나 고서 경매장을 자주 기웃거립니다. 소년, 개벽, 문장 같은 잡지들. 육당, 만해, 가람, 노산, 지용, 청마, 미당 등 초판본을 구해다 놓고 옛 활자를 더듬어보는 재미에 쏠려 있기도 합니다.
  겨우 백년 남짓한 詩의 현대사도 꿰지 못하고 어찌 모국어의 깊이를 어림할 수 있으며 ‘나의 詩’를 만들어내겠다고 붓을 들 수 있겠습니까. 저부터 종아리를 걷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국어, 그리고 한글이 인류가 쓰는 어느 문자보다도 아름답고 풍요롭고 위대한 것이거늘, 제게 주어진 이 엄청난 축복의 대 자원을 올바르게 쓰지 못하고 단군 개국 이래 선인들이 쌓아올린 장엄한 역사, 참으로 불가사의한 문화 창조를 글감으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덜 깨인 머리 오그라진 조막손임을 저부터 회초리를 맞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제 눈에는 한국시의 앞날이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게으름과 모자라는 공부는 저 하나로 끝내고 이 땅의 문학 천재들의 ‘위대한 한국시’를 향한 치열한 머리싸움과 몸싸움이 있어야겠습니다. 그렇게 앞서나가는 시인들의 등 뒤에서 저는 아픈 손뼉을 치고 싶습니다.
  끝으로 한국시인협회의 눈부신 비상과 제게 큰 상을 주신 시인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이근배
   • 1940년 충남 당진 출생.
   • 1960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졸업.
   • 1961년《경향신문》신춘문예 시조 당선.
   • 1961년《서울신문》신춘문예 시조 당선.
   • 1961년《조선일보》신춘문예 동시 당선.
   • 1962년《동아일보》신춘문예 시조 당선.
   • 1964년《한국일보》신춘문예 詩와 시조 당선으로 등단.
   • 시집 :「사랑을 연주하는 꽃나무」「노래여 노래여」
              「사람들이 새가 되고 싶은 까닭을 안다」
              「종소리는 끝없이 새벽을 깨운다」「추사(秋史)를 훔치다」.
   • 시조집 :「동해바닷속의 돌거북이 하는 말」「달은 해를 물고」.
   • 장편서사시집 :「한강」.
   • 기행문집 :「詩가 있는 국토기행」.
   • 활판시선집 :「사랑 앞에서는 돌도 운다」.
   • 제2,3회 문공부신인예술상, 가람문학상, 중앙시조대상, 한국문학작가상,
     육당문학상, 월하문학상, 편운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시와시학작품상,
     유심작품상, 고산시조문학상, 만해대상 수상.
   • 은관문화훈장 수훈.
   • 한국시조시인협회장, 한국시인협회장, 지용회 회장 역임.
   • 현재 공초숭모회 회장, 만해학교 교장, 신성대학교 석좌교수, 신성대학교
     박물관장, 한국대표명시선100 편집주간,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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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젊은시인상]








 여 행




윤   성   택
<시집「감(感)에 관한 사담들」(문학동네, 2013)>



  여정이 일치하는 그곳에 당신이 있고 길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시간은 망명과 같다 아무도 그 서사의 끝에서 돌아오지 못한다 그러나 끝끝내 완성될 운명이 이렇게 얽히고 있다는 사실, 사랑은 단 한 번 펼친 면의 첫줄에서 비유된다 이제 더 이상 우연한 방식의 이야기는 없다 이곳에 도착했으니 가방은 조용해지고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다 여행은 항상 당신의 궤도에 있다





기억 저편




한 사람이 나무로 떠났지만
그 뒷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어느 날 나무가 되어 돌아온 그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
어쩌면 나는 그대 이미 떠난 그였고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는지 모른다
떠난 그가 남긴 유품을 새벽에 깨어
천천히 만져보는 기분,
길을 뒤돌아보면
그를 어느 나무에선가 놓친 것도 같다
나는 얼마나 멀리 더나온 것일까
살아간다는 건 온 신경을 유목한다는 것이다
그가 떠난 자리에 잠시 머물면서
이렇게 한 사람을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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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고감도의 열린 詩를 읽는 즐거움

 

  윤성택 시인은 2001년《문학사상》등단 이래 꾸준히 작품 활동을 전개해 왔으며, 시집으로「리트머스」, 이번에 낸「감(感)에 관한 사담들」(2013, 문학동네시인선)을 갖고 있다.
  그의 詩들은 선도가 매우 높다. 우듬지가 싱싱하게 가득 돋아나는 생명 질서의 곡선을 그의 시어들은 펼치고 있다. 이 점을 높이 평가, 수상작의 첫째 요건으로 삼았다. 요즈음 젊은 시인들이 내세우고 있는 詩의 척도는 내면적 굴절, 그 확장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나머지 작품들이 폐쇄적이고 따라서 소통 불능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詩가 열어주는 자유와 우주의 거대 공간은커녕 섬세 미묘의 詩의 본질을, 그 감칠맛을 만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그러나 윤성택은 이번의 시집 표제 ‘감(感)에 관한 사담들’에서도 인지되는 바와 같이 자신이 경험한 사실적 체험과 또는 실제 경험하지 않은 환상을 토대로 詩를 천착하고 구축하는 시편들에서 몸과 감각의 생생함을 잃지 않고 잇다. 그것의 본질은 생명의 질서와 소통이다. 특히 그는 이와 같은 세계를 체험의 바탕인 기억의 시적 형상화로 이루어내고 있다. 그는 말하고 있다. “나는 얼마나 떠나온 것일까/살아간다는 건 온 신경을 유목한다는 것이다/그가 떠난 자리에 잠시 머물면서/이렇게 한 사람을 부르는 것이다”(<기억의 저편> 부분) “살아간다는 건 온 신경을 유목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그의 ‘감(感)’이 얼마나 ‘고감도(高感度)의 것인가를 감지하게 된다. 또한 윤성택의 詩를 읽어가노라면 그의 詩 전체를 휩싸고 도는 그 특유의 ’외로움과 그와 연동된 우울의 서정‘(엄경희)이 형성해 내는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소통불능인 젊은 詩들과 달리 고감도의 열린 詩를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윤성택 시인은 제공하고 있다. 축하한다.






심사위원 : 김종길, 김후란, 허영자, 정진규
김종해, 오세영, 오탁번, 이건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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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몸이 생각을 앓고 나면


윤   성   택


  몸이 생각을 앓고 나면 다시 생각이 몸을 추슬러 한 사람이 됩니다. 나도 모르게 어딘가에 부딪친 멍을 샤워하다 발견할 때, 차가운 물이 눈동자에 닿기 전 순식간에 감는 눈의 반응에, 몸이 나보다 더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느낍니다. 화초 잎을 가위로 자른 다음 다시 가위를 화초에 가까이 대면 화초도 웁니다. 잎맥 사이로 급속하게 전기저항이 일면서 안으로 부르르 떠는 것입니다. 식물에게도 감정이 있으니 내 몸도 나 아닌 마음이 있는 걸까요. 내 몸에 들어가 갑옷을 입듯 깨는 아침, 내 몸이 가만히 부르르 떱니다. 그 느낌을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더없이 감사드립니다.







윤성택
   • 1972년 충남 보령 출생.
   • 2001년《문학사상》으로 등단.
   • 시집「리트머스」「감(感)에 관한 사담들」.
   • 산문집「그 사람 건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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