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한국의 야생화 시집 (1) [옹이 박힌 얼음 위에서도 꽃은 핀다]
벼
이젠 구름이 되자
바람이 되자
옛날 옛날에
주식이었던 피를 몰아내어 잡초로 만들고
그 자리에 앉은 원죄를 털어 버리지 못해서
해가 지고 난 후에야
조그맣게 하얀 꽃을 피워야 하며
들판을 노랗게 물들이우고도
반듯하게 고갤 들지 못하는구나
내 손으로 일궈 온 역사
지금까지는 굶주리고 헐벗은 세월이었지만,
앞날이 밝을 거라고 믿으면서
가녀린 몸뚱이 세찬 비바람을 맞아 가며
도열병 벼멸구 엽고병 이화명충 진딧물 깜부기 병
모든 병충해 이겨내며
낟알마다 토실하니 살찌워
한 때는 재미도 보았었지
갈수록 왜 이리 힘이 드는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여름내 흘린 땀의 보람은
아지랑이로 흩어지고
모판 자재값 농약값 인건비 제하고 나면
손에 쥐는 건 늘어만 가는 빚통장
주름살이 자꾸 굵어지는데
그나마 수입 쌀 개방에
허리는 더욱 구부정하게 휘어지고,
늘어나는 빈집
묵어가는 논밭뙈기
마당에까지 차오르는 잡초들
도시로 떠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오늘도 반듯하게 고갤 들지 못하는구나
피를 몰아낸 원죄가 이리도 무거운 줄
어찌 알았으리
유기농법이니 오리농법이니
아람이 벌어지도록 끌어안아 보지만
작은 몸뚱이로는 너무 힘에 부쳐
나비는 날개에 청산을 싣고
하늘로 날아오르는구나
그대여, 팔을 모아 어깨를 잡자
버릴 수 없는 우리의 역사
지금은 비바람이 몰아치는 태풍주의보
쓰려져 가는 볏대를 굳게 붙들어 잡아
오곡 익는 들판에서
즐거운 노동의 노래를 불러야 하잖아
낟알이 무겁다고 고개 못 들라는 법은 없잖아
반듯하게 고개 들고서도
풍년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거야
이제는 구름이 되자
바람이 되자
※ 벼 : 벼과의 한해살이풀로 인도와 말레이시아 원산이며 우리나라 각처의 논에서 재배하는 식용작물이다. 줄기는 곧게 서고, 포기를 형성하며, 잎은 선형으로 표면과 가장자리가 꺼칠꺼칠하다. 엽설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7~9월에 꽃이삭이 달리며 흰색의 꽃이 피는데 이삭에 까락이 있다. 열매를 주식(主食)으로 식용하고, 한방에서 종자(씨)를 발아시켜 말린 것을「곡아(穀芽)」라 하고, 찰벼의 뿌리를「나도근(糯稻根)」이라 하여 약재로 쓴다.
[열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