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야생화 시집 (6) [그냥 꽃이면 된다]
국화바람꽃
어느 날 국화가 바람 났다 아니 바람 들었다고 했다 바람이 들어 집을 나갔다고 했다 여름 끝나는 처서 때면 어김없이 노랗게 꽃을 피우며 그토록 금슬 좋고 정숙하다고 소문났던 국화 새댁이 어느 외간사내와 눈이 맞아 바람 들어 야반도주하듯 집을 나갔는지 도대체 모르겠다며 다들 수군거렸지만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고 들리는 풍문에는 강원도 어느 산골에서 보았다고 했다 전국을 떠도는 약초 수집 장사꾼의 입을 통하면 예전의 국화답지 않게 영 얼굴이 딴판으로 변했더라고 했다 얼굴만 변한 것이 아니라 가을에 노란 꽃을 피우던 것이 이제는 하얀 꽃이 봄에 피더라고 했다 하얗게만 피는 게 아니라 가끔은 아주 맑은 연보라의 꽃도 피우더라고 했다
무슨 바람이길래 가을꽃이 어찌 봄꽃으로 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바람 들면 무엇인들 아니 변하랴 싶은 생각을 하며 한곳에 터 잡고 행복하게 잘 살면 되었지 싶어 그래 다행이다 꽃이면 되는 거지 마음 놓여 속으로 피시식 웃으며 언제 한번 몰래 찾아가 엿보고 와야지 괜히 가슴 설레었다
아, 노란 국화도 바람 들면 하얀 바람꽃 되기도 하는구나 가을꽃이 봄꽃 되기도 하는구나 이런 바람이라면 얼마든지 바람 들어도 바람이 나도 좋겠다 나도 그리 바람 들고 우리 사는 세상도 그리 바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름다울까 바람이 그저 바람 아니라 실현 될 수 있는, 헛된 일 아닌 참된 일이라는 걸 보았다
※ 국화바람꽃 :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 강원도 이북의 산이나 들에 자생한다. 뿌리줄기는 옆으로 뻗는다. 잎은 뿌리에서 나오는데 2회 3출의 작은잎으로 된 깃꼴겹잎으로 잎자루가 길다. 작은잎은 계란형으로 2~3개로 깊거나 완전히 갈라지고 끝이 둔하며 결각(缺刻)이 있다. 줄기에 달리는 잎 모양의 총포(總苞)는 뿌리에서 나오는 잎과 비슷하며 3장으로 되어 있는데 다시 3갈래로 갈라지고 자루가 있다. 4~5월에 연한 담자색(淡紫色) 또는 흰색의 꽃이 피는데 한 개의 긴 꽃줄기 위에 한 송이씩 핀다. 7~8월에 넓은 피침형의 열매가 갈색으로 익는데 두상(頭狀)으로 모이고 흰색 털이 나 있다. 잎의 모양이 국화의 잎처럼 생겼다 하여 이름이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