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열매]
한국의 야생화 시집 (6) [그냥 꽃이면 된다]
푸른여로
삶의 旅路
숨이 턱턱 막히는 暴炎의 고개마루턱에서 너를 만났다
여름마다 푸르게 피는 꽃이
몇 년째 피지 않는다고 너는 내게 말했다
땀 흘리며 몇 해 더 기다려 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도 요즘 詩가 되지 않는다고 말해줬다.
몇 번이나 강을 건너고 산을 만나 열두 고개 스무 고개 다 넘었어도 이렇지 않았는데
이번 여름고개에선 써지지 않는 詩에 그만 숨이 멎는다고 했다
땀을 많이 흘려 기진맥진해진 걸까
그렇다 해도 그렇지
땡볕 아래여야 해오라비난초는 하얀 날개 활짝 펴고 날아오를 수 있고 상사화는 그리움의 깊이를 늘일 수 있는데 나만 혼자 이깟 더위 하나 견뎌내지 못하고 축 늘어져야 할까
한동안 주저앉아 있었다
힘을 내야지 어떻게든 일어서야지 생각뿐이었다
暴炎과 열대야는 길었다 處暑를 지나고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버텨야 했다 반드시 가을은 오는 것이므로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귀를 앓았다. 폭염과 열대야 속에서 귀를 앓았다 귓속에 혹이 불거지고 터져서 고름이 흘렀다. 中耳炎이었다 화끈거리고 근질거리며 옆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 먹먹한 귀를 붙잡고 푸르게 놓여 있는 앞길은 어디로 숨었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결국 수술을 하고 나서야 귀앓이는 멈췄다 白露가 가까이 있었다 귀앓이가 멈췄을 때야 다시 힘을 내어 일어설 수 있었다 그리고 너를 또 만났다
몇 년째 꽃이 피지 않는다던 네가 열매를 달고 있었다 꽃을 볼 수 없었던 자리에 푸른 열매가 익어가고 있었다 그새 꽃이 다녀갔다고 했다 이젠 해마다 꽃이 다녀갈 거라고 했다
너의 말을 듣는 순간 어느새 내 입가에서도 줄줄 詩가 흐르고 있었다
※ 푸른여로 :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 각처 산지의 나무 밑이나 풀밭에 자생하는 유독성 식물이다. 줄기와 꽃차례에 돌기 모양의 털이 있다. 잎은 줄기 밑부분에서 어긋나는데 좁은 피침형으로 엽초(葉鞘)가 줄기를 감싸고, 끝이 뾰족하며, 밑은 좁아진다. 7~8월에 녹색의 꽃이 피는데 줄기 끝에 성기게 달려 총상 원추화서를 이루며, 처음에는 연한 녹백색으로 피어서 점차 녹색으로 변한다. 꽃차례의 밑부분에는 수꽃이 피고 윗부분에는 양성화가 핀다. 9~10월에 3개의 줄이 패인 타원형의 열매가 갈색으로 익는다. 한방에서「여로(藜蘆)」라 하여 뿌리줄기를 약재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