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야생화 시집 제7집 [꽃, 내게로 와서 울었다]
그녀는 나를 중의무릇이라 부른다
한겨울 동안거(冬安居)나 한여름 하안거(夏安居)에 든 절집 마당같이 적요(寂寥)가 흐르는 그녀의 정원 꽃밭은 나의 신전(神殿)이다. 신전에서 홀로 가사장삼(袈裟長衫) 대신 중의 물옷 해진 누더기 녹의(綠衣)를 걸치고 툭하면 염불보다 술타령에 젖어 있는 나를 그녀는 땡중 물거지라 부르고, 꽃샘추위로 아플 때마다 신열(身熱) 오르는 내 이마에 물수건이 되어 주는 그녀를 나는 약사여래보살(藥師如來菩薩)이라 부른다.
우수(雨水) 경칩(驚蟄) 지나 갑자기 돌진해 오는 봄의 잔등을 올라타고 들판 한 바퀴 돌아보니 베들레헴의 노란 별무리 한 무더기 내 가슴에 들어와 박힌다. 그녀가 내게 표창(鏢槍)을 던진다. 그녀에게 포로가 된 나는 그녀의 마법에 걸려 꼼짝없이 그녀의 정원 꽃밭에서 중의무릇 꽃으로 피어난다.
그녀의 표창에 맞은 사랑의 상처는 먼 산의 흰 눈 바라기 하다가 뜨끔 발밑에서 기습당한 꽃멀미, 꽃샘추위보다 더 얼얼하다. 어질어질 머리 아프다. 낮에는 그럭저럭 괜찮다가도 밤이면 온몸 펄펄 끓어오르는 꽃몸살을 앓는다. 황홀한 아픔 잠들지 못할 때, 자꾸만 흐트러지는 마음 힘껏 모두어 곧추세우고 일어나 앉아 화선지 앞에 놓고 떨리는 손으로 난(蘭)을 친다.
아무리 황홀하다 해도 아픔은 상처, 일편단심 사랑한다면서 왜 아픔을 주는가. 어느 누가 사랑은 그리움이라 했던가. 그리움은 아픔의 흔적, 헤어져 그리워하는 것보다 무슨 일 있어도 곁에서 함께 같이 아파하는 게 진정한 사랑 아닐까. 아무튼 그녀는 나를 일편단심 변함없이 사랑한다면서 난(蘭)을 치는 고고한 중의무릇이라 부르고 나는 그녀를 마음 자상한 약사여래보살(藥師如來菩薩)이라 부른다.
※ 중의무릇 :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 중부지방 이남의 각처 산기슭의 부엽질(腐葉質)이 많은 반그늘에 자생한다. 비늘줄기는 계란형으로 갈색을 띤다. 키는 20cm까지 자란다. 잎은 구근(球根)이 위치한 기부(基部)에서 1개가 올라오는데, 줄기를 육질(肉質)로서 줄기를 감싸고 약간 안쪽으로 말리는 듯하며 밑부분이 꽃줄기를 감싼다. 4~5월에 노란색의 꽃이 피는데,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꽃줄기 끝에 3~10개의 꽃이 산형꽃차례로 모여 달린다. 꽃줄기 윗부분에는 잎으로 된 두 장의 포(苞)가 붙어 있다. 꽃잎은 긴 타원형으로 6장이며 뒷면에 녹색이 돈다. 수술은 6개로 꽃잎 길이보다 짧다. 꽃은 햇볕을 쬐면 활짝 피고 어두워지면 꽃잎을 오므린다. 6~7월에 둥근 삭과(蒴果) 열매가 갈색으로 익는데, 막질(膜質)로 3개의 능선이 있다. 한방에서 ‘정빙화(頂氷花)’라 하여 비늘줄기를 강심제(强心劑)의 약재로 쓴다. 우리나라와 일본, 만주, 중국, 사할린, 시베리아, 유럽 등지에 분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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