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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가 있는 야생화 음악편지

(11) 적벽강에서 주워 온 조약돌 열 한 개

    지난 여름은 참으로 참혹했습니다.
  태풍 '루사'가 전국토를 마구 휘잡아 쓸고 간 뒤의 우리 국토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어쩜 그렇게도 모질고 매정하게 뒤흔들어 놓았는지, 새로 힘을 내어 일어서기가 너무 힘이 듭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서로서로 힘을 북돋워 주고 위로해 주면서 다시 용기를 내어 일어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태풍 '루사'가 지나간 뒤의 헝클어진 모습이지만, 그래도 가을은 성큼 다가와서 우리들 곁에 머물면서 파아란 하늘과 하얀 햇살을 듬뿍 쏟아놓고 있듯이 우리의 일그러진 얼굴에도 하루 빨리 하얀 웃음이 피어날 수 있도록 모두가 마음을 합하고 손을 모아야 하겠지요.

  태풍이 휩쓸고 간 뒤, 우리의 꽃 야생화들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안부가 궁금해서 며칠을 산으로 들로 쏘다니다, 덜컥 감기몸살로 4일을 된통 앓았습니다.
  일 년에 한 번은 꼭 가을의 문턱에서 된통 앓아눕는 일이 올해에도 어김없이 찾아와 온몸을 마구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한 바탕 홍역을 치르고 나서도 다시 또 야생화들이 보고 싶기도 하던 차에, 지난 7일 대구의 서지월 시인으로부터 제1회 적벽강 물소리詩낭송회를 개최한다는 우편연락을 받고 급히 충남 금산의 적벽강을 다녀왔습니다.
  금강의 상류 지류의 하나인 적벽강은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수통리 일원에 위치한 강으로서 '소동파의 적벽부'를 연상케하는 중국의 적벽강과 경치가 아주 비슷해서 붙여진 강의 이름이라 합니다.
  7일 저녁 급히 대전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서지월 시인과 함께 대전의 여러 시인들을 조우하여 이튿날 새벽 4시까지 소주잔을 기울이며 정담을 나누었고, 다시 배재대학교에서 석사과정에 있는 중국 연변문학의 석화 시인과 서지월 시인, 그리고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에 적을 두고 있는 백민 문학도와 함께 적벽강에 도착한 것은 동이 트는 5시 무렵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우리는 차 속에서 한두 시간 대충 눈을 붙이고 난 뒤, 12시부터 시작할 詩낭송 행사를 위해 천막도 치고 자리도 펴고 앰프도 설치하면서 만반의 준비를 해놓고, 행사에 참석할 다른 시인들을 기다리며 가을 하늘의 자연에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적벽강의 비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새파란 가을 하늘 아래서 병풍을 두른 듯 장엄하게 펼쳐져 있는 석벽을 어루만지며 도도하고도 유유히 흐르는 물줄기는 잠시나마 세상의 모든 근심걱정을 잊어버리게 하는데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도 수마가 핥고 간 흔적은 예외일 수 없었고, 강가 기슭에 있는 배나무 밭에도 태풍 피해의 쓰린 상처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도 야생화들은 건강하게 꽃을 피우고 가을을 수 놓고 있었습니다.
민쑥부쟁이, 며느리밑씻개, 갈대꽃, 억새꽃, 물봉선, 할미질빵, 사위질빵, 수크렁, 자주수크렁, 강아지풀, 자주강아지풀, 며느리밥풀꽃, 바보여뀌 등과 데이트를 하면서, 그들의 활짝 웃고 있는 얼굴로 하여 우리의 가슴은 행복감으로 출렁였습니다.

  금산읍에서는 인삼 축제가 한창인데다가 수많은 벌초 성묘객의 행렬들로 인해 국도는 물론 고속도로가 차량들로 막혀, 행사에 참석해야 할 시인들이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해 행사 진행은 제 시간을 넘에 지연될 수밖에 없었고, 우리는 어죽으로 점심 식사를 하며 지쳐 가는 마음을 추스리고 있었습니다.
  오후 한 시가 넘어서야 가까운 대전의 여러 시인들이 도착하였고, 뒤이어 서울, 대구 등 전국 경향각지의 여러 시인들이 도착을 완료한 것은 오후 3시가 넘어서였습니다.
  결국 행사는 오후 4시에 진행되었으나, 50여명의 참석 인원 모두는 그저 적벽강의 비경에 취해 마냥 즐거운 마음들이었습니다.
  2시간여의 시낭송을 마치고 뒷풀이를 하면서, 내년에는 벌초 시기를 피해서 일정을 조정하고 토요일 저녁에 모여 달빛과 어우러진 적벽강의 비경을 감상하면서 행사를 가질 것을 논의하였고, 우리의 모임 이름을 <좋은 사람들의 모임 문화사랑/2000년대의 시인회의>가 개최하는 <적벽강 물소리詩낭송회>로 하였습니다.
  전국 경향각지에서 더 많은 문인들이 참석함은 물론, 화가, 음악가 등 기타 문화 예술인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 등 詩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참석할 수 있으며, 부담없이 회비 1만원으로 詩의 향기 속에서 서로의 친목을 다질 수 있는 행사로서 사전에 미리 치밀한 계획을 세워 알차게 치를 수 있도록 서로가 역할 분담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모든 행사 일정을 끝마치고, 오후 9시경에 귀가길에 올라 서울에 도착한 것은 그 이튿날 새벽 4시경, 경부고속도로가 벌초 성묘객 행렬의 차량들로 인해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완전 마비 상태와 다름없었고, 설이나 추석 때의 귀성행렬을 연상케 하였습니다.
  몸은 피로로 지쳐 있었지만 정신은 쾌활하였고 마음은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짐을 풀어 정리하면서 보니 가방에는 적벽강에서 주운 조약돌 열한 개가 들어 있었습니다.
  비록 조약돌이지만 무늬가 아름답게 수 놓여져 있는 것이 예쁘고 앙증맞은 귀여운 것들이었습니다.
  크기가 좀더 컸더라면 아주 훌륭한 수석으로 이름 자랑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아쉬움이 드는 작은 조약돌이지만, 그래도 크기에 맞게 받침대를 깎아 세워 놓으면 작은 수석으로도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 조약돌들은 앞으로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기념일에 아름다운 사연의 엽서와 함께 한두 개씩 우편으로 보내는 선물로 쓸까 생각합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언제나 마음을 함께하는 절친한 文友 樹幽堂 河玉伊 시인에게도 보내고, 함께 동인 활동을 하는 崔淑卿 시인, 강흠경 시인, 조임생 시인에게도 보내고, 茶軒 宋恩愛 시인에게도 보내고, 이정님 시인에게도 보내고, 좋은 방송 열심히 하는 새벽지기님에게도 보내고......

  새벽지기님, 안녕하세요.
  언제나 좋은 방송 '솔바람 물소리' 잘 듣고 있습니다.
  태풍 '루사'로 인해 비통과 허탈감에 빠져 있는 청취자 분들에게 어서 빨리 청명한 가을 하늘처럼 밝은 모습을 되찾기를 빌며, 저의 졸시와 함께 용기와 위로를 보내 드리면서 백대웅 작곡 <가야금협주곡 소나무>를 신청곡으로 띄웁니다.



        가시연

                  김   승   기



       붉디붉은 깨달음을 얻고서도
       온몸 가득 가시를 둘러쳐야 되겠느냐

       지금껏 물바다 위에서
       고행을 이루어 오지 않았느냐

       번쩍, 영혼을 울리는 깨침이어도
       밀려드는 번뇌
       그렇게 무섭더냐

       오랜 수행이었어도
       어느 순간 불꽃 튀듯이 찾아온 깨침이기에
       앞으로 지켜나갈 수행이 또 필요하겠지

       그렇더라도 이젠
       가시를 거두게나

       아득한 물바다 한가운데를
       헤엄치는 개구리 한 마리쯤 뛰어오를
       쉼터 하나는 마련해 두어야 하지 않겠느냐



             * 가시연 : 수련과의 한해살이풀로 수생식물이다.
                            7-8월에 붉은자주색의 꽃이 핀다.



                           2002년 9월 10일 청명한 가을 하늘 저녁무렵에
                          우리의 꽃, 야생화의 시인 夕塘 金 承 基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