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열매]
한국의 야생화 시집 (5) [울어본 자만이 꽃의 웃음을 듣는다]
대추나무
지구온난화현상으로 따뜻하기만 했던 겨울을 몇 십 년 만에 찾아온 한파가 갑자기 들이닥쳤다
극빙의 장대추위,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었다
언제나 겨울이 끔찍한 내게는 이번에도 예외 없이 온몸 구석구석 신경세포조직이 바짝바짝 오그라드는데,
조실 큰스님 가부좌로 앉아 참선하듯
울 밖 대추나무 한 그루
무심한 얼굴로 서 있다
영하의 겨울 속에서 얼었다 녹았다 하며 마르는 황태처럼
삭정이로 초죽음의 절정에까지 입멸하고 난 후에야
가장 나중 잎을 내며
한여름 복날이 되어서야 잠시잠깐 세 번의 극렬한 희열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대추나무
주렁주렁 햇살 아래 반짝이는 가을날의 저 시뻘건 열매 좀 보아!
육신은 쭈글쭈글 비틀리며 말라가지만
여름날 한순간의 황홀했던 격정
언제 있었냐는 듯
가슴속 딴딴한 사리를 품은 채
길고도 깊은 적멸에 드는,
극과 극을 넘나드는 오르가즘
그 어떤 삶이 저토록 찌릿찌릿 아름다울 수 있을까
몸에 열이 많아 한겨울에도 끙끙 열병을 앓는 나는
장대추위에도 아랑곳없이 무심한 얼굴의
저 열매, 대추를 먹지 못한다
※ 대추나무 : 갈매나무과의 낙엽성 활엽 교목으로 유럽 남부와 서남부 아시아 원산이다. 우리나라 각처의 마을 부근에서 재배한다. 나무줄기에 가시가 있고, 잎은 어긋나는데 윤택이 있으며 계란형이다. 6~8월에 연한 황록색의 작은 꽃이 피고, 9~10월에 타원형의 열매가 윤이 나는 적갈색으로 익으며 단맛이 난다. 많은 재배품종이 있으며, 열매는 식용 ‧ 음료용으로 쓰이고, 한방에서「대조(大棗)」라 하여 약재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