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열매]
한국의 야생화 시집 (5) [울어본 자만이 꽃의 웃음을 듣는다]
문주란
언젠가 꼭 한 번은 쓰고 싶었다. 제주도의 여름, 토끼섬 현무암 돌담 아래 금빛 모래밭에 피어있던 문주란, 그 새하얗게 실처럼 갈라지며 향기 피우는 꽃을 본 후로 문주란에 대해 쓰고 싶었지만, 아직껏 제대로 써 본 적이 없다.
화분에 앉혀 기르는 문주란만 보아오다가 자생 군락지가 있다는 말 듣고 몇 번이나 벼르고 별러 찾아간 제주도의 토끼섬, 파도 높아 섬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보다가 발길 돌려야만 했던 안타까운 제주도의 여름, 개도 걸리지 않는다는 여름감기로 신열이 오르고 깔깔한 혓바닥이 마침내는 입안까지 헐어 고름으로 차올랐었다.
그 후로도 몇 번을 시도한 끝에 겨우 들어간 토끼섬, 현무암 아래 금빛 모래밭에서 반짝이는 푸른 잎과 실같이 새하얗게 갈라지는 꽃잎, 별 모양 같은 것이 할아버지 흰 수염 같기도 하고 할머니 흰 머리카락 같기도 한 꽃을 보고 충격 받았던 그날, 털실처럼 포근하게 느껴지는 꽃술, 온몸을 감싸고도는 향기, 저음의 여왕이라 불리는 대중가요 가수 문주란의 부드럽고 우아한 노랫소리와 자꾸만 오버랩 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희열 속에서 꽃을 보고 있었다.
언젠가는 꼭 한 번 써보고 싶었다. 제주도의 여름, 용암으로 굳어버린 불의 돌, 현무암, 그 거무스름한 바위 돌담 아래 금빛 모래밭에서 무리 지어 새하얗게 피어 있던 꽃, 사진 찍는 것도 잊어버린 채 홀려 있다가 겨우 정신 차려 몇 장 찍었던 기억, 반드시 어울리는 글을 쓰고 싶었지만, 문주란을 떠올리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오늘도 쓰려고 애를 썼지만 결국엔 제대로 쓰지 못하고 이렇게 사설만 늘어놓고 만 꼴이 되었다.
문주란뿐만이 아니다. 야생화, 꽃을 찾아 오랜 세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여러 들꽃 만나보았지만, 정작 글로 쓰려고 그 꽃을 떠올리면 처음 만났던 순간의 상황만 머릿속에 뱅뱅 맴돌 뿐,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쓰려고 쓰려고 애쓰다가 언젠가는 쓸 수 있겠지 하며 그만둔 게 어제 오늘 한두 번의 일이 아니다.
※ 문주란 : 수선화과의 상록성 여러해살이풀로 유독성 식물이다. 우리나라 제주도의 토끼섬 해변의 모래땅에서 군락으로 자생한다. 뿌리줄기는 기둥 모양이며, 비늘줄기의 밑동에서 굵은 수염뿌리가 많이 나오고, 전체가 크며, 땅위줄기는 곧게 선다. 잎은 줄기 끝에서 줄기를 둘러싸고 모여나와 사방으로 벌어지며, 띠 모양으로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없이 밋밋하며, 두껍고 주름이 지며 광택이 난다. 6~8월에 흰색의 꽃이 피는데 여섯 개의 가는 꽃잎 조각은 뒤로 젖혀지며 향기가 있고, 8~9월에 열매가 둥근 모양으로 익는다. 한방에서「나군대(羅裙帶)」라 하여 잎을 약재로 쓴다. 지금은 제주도 곳곳에 조경으로 식재하고 있으며, 자생 군락지인 제주도의 토끼섬은 천연기념물 제19호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