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야생화 시집 (5) [울어본 자만이 꽃의 웃음을 듣는다]
/시/인/의/말/
꽃이 꽃을 위하여
— ‘홀씨’ 유감(有感) —
필자는 문학 활동을 하면서 여러 문인의 글에서 잘못된 표현과 오류를 여기저기서 심심찮게 발견하곤 한다. 문학은 문학적 사고(思考)를 필요로 하고, 문학만이 가지는 독특한 특성과 표현 방식이 있기 때문에 어떤 정해진 틀에 구속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문학적 사고(思考)가 모든 문제를 다 포용하고 용납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문학적 사고(思考)에도 분명히 그 한계가 있는데, 문인은 바로 그 점에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한 예로 ‘민들레 홀씨’라는 표현을 들 수 있다. 국어사전을 보면, ‘홀씨’는 ‘포자(胞子)’를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라고 나와 있다. 국어사전에 실려 있는 ‘포자(胞子)’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자.
<민중서관 발행 엣센스 국어사전(문학박사 이희승 감수)>
※ 포자(胞子) ㊔ ①〚식〛균류(菌類)나 식물이 무성생식(無性生殖)을 위해 형성하는 생식 세포. 발아(發芽)에 의해 한 개체가 되는데 특정 세포에서 감수분열(減數分裂)하는 것, 몸체 일부가 분열하여 생기는 것, 크기가 다른 것, 균사의 끝에 생기는 것 등 종류가 많음. 홀씨.
※ 포자낭(胞子囊) ㊔〚생〛내부에 포자를 형성하는 세포 또는 조직.
※ 포자식물(胞子植物) ㊔ 포자에 의해 번식하는 식물. 양치류(羊齒類), 선태류(蘚苔類), 조류(藻類), 균류(菌類)의 총칭. ↔ 종자식물(種子植物).
이상의 국어사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홀씨’란 고사리 같은 양치식물(羊齒植物), 이끼 같은 선태류(蘚苔類)의 식물, 미역 다시마 같은 해조류(海藻類)의 식물, 버섯 같은 균류(菌類) 등과 같이 꽃을 피우지 못하는 포자식물(胞子植物)의 포자(胞子)를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다. 포자식물(胞子植物)의 반대말은 종자식물(種子植物)이라고 하는데, 꽃을 피워 열매를 맺고 씨앗으로 번식하는 현화식물(現花植物)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민들레는 어떤 식물인가? 민들레는 꽃을 피우는 현화식물(現花植物)이며 열매를 맺어 씨앗으로 번식하는 종자식물(種子植物)로서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다만, 다른 현화식물(現花植物)과 비교해 볼 때 열매의 씨앗이 특이하게 생겼을 뿐, 엄연히 씨앗으로 번식하는 종자식물(種子植物)이다.
국화과의 식물 중에서 민들레, 엉겅퀴, 씀바귀, 고들빼기, 상추, 쑥갓, 보리뱅이, 조뱅이, 지칭개 등과 같은 풀에는 열매의 씨앗이 갓처럼 생긴 털이 달렸으므로 ‘갓털씨’라고 부른다. 그럼, ‘갓털씨’에 대하여 사전을 찾아보자. ‘갓털씨’라는 말은 국어사전에는 등재되어 있지 않고 식물사전 또는 식물도감의 식물용어편에만 수록되어 있으며, 국어사전에는 ‘갓털’이라는 단어가 수록되어 있다. 그럼 국어사전에 있는 ‘갓털’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자.
<민중서관 발행 엣센스 국어사전(문학박사 이희승 감수)>
※ 갓털 ㊔ 〚식〛꽃받침의 변형으로 씨방의 맨 끝에 붙은 솜털 같은 털. 관모(冠毛).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굳이 식물사전을 살펴보지 않고 국어사전만 펼치더라도 민들레의 씨는 ‘홀씨’가 아니라 ‘갓털씨’라고 해야 옳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런데 어찌하여 대부분 사람들이 민들레의 씨를 ‘홀씨’라고 잘못 알고 있는 걸까? 그것은 다름 아닌 <민들레 홀씨 되어>라는 1980년대에 매우 인기 있었던 대중가요의 영향력 때문으로 보인다. 털이 달린 민들레의 씨가 바람을 타고 멀리 잘도 퍼져 날아가는 것을 보고 작사가가 잘못 표현했던 것이다. 그래서 일반인은 그냥 무심코 따라 부르게 되었고, 일부 문인들까지도 오류를 범하게 되었다고 여겨진다.
식물학자들은 어쩌면 문인들을 한심하게 여기며 “제대로 좀 알고 글을 써라. 알려고 노력이라도 좀 해라.”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지금은 기술의 발달로 온실이나 배양실에서 계절에 관계없이 아무 때나 강제로 식물이 꽃을 피우게 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그래도 자연 생태계에서는 가을에 피는 꽃을 봄에 핀다고 하면 안 된다. 또한,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에서 보듯이 ‘사슴’을 가리키며 ‘말(馬)’이라고 해서도 안 된다. 아무리 문인에게 언어를 창조할 수 있는 언어창조권이 있다고 할지라도, 과학적으로나 우주와 자연의 이치에 맞지 않게 함부로 바꾸어 쓰면 절대로 안 되는 것들이 있다. 글을 쓰는 문인이라면, 최소한 이런 것을 제대로 알고 쓰도록 노력해야 하며, 글을 쓸 때는 늘 국어사전을 곁에 두시라고 권하고 싶다.
따라서 민들레의 씨를 ‘홀씨’라고 표현하는 것은, 어떠한 문학적 사고(思考)를 동원한다 하더라도 문인만의 독특한 언어표현이라고 주장하며 우길 수 있는 아무런 근거도 없고 설득력도 없다. ‘갓털씨’라는 말을 문학작품에 사용할 때 어감이 좋지 않다고 생각된다면, 그냥 ‘씨’ 또는 ‘꽃씨’라고 하든지 아니면 털이 달린 씨이므로 ‘털씨’라고 하면 될 것이다.
이러한 잘못과 오류를 필자가 일러주면 일부 문인들은 기꺼이 수용하는데, 일부는 자기는 식물학자가 아니니 자기만의 독특한 표현법으로 쓰겠다며 참견하지 말란다.
필자 또한 만물박사가 아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 사람이 살면서 자기의 전공분야도 다 모르는데 전공분야도 아닌 것까지 어찌 모두 알 수 있겠는가? 그래서 하나를 알더라도 올바르게 제대로 알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종종 글을 쓰면서 오류를 범하는 일이 있을 때, 그 누군가 친절히 지적해 주면 기꺼이 고맙게 수용한다.
문인이 사용하고 표현하는 언어와 문자의 영향력은 매우 크기에, 문인은 우리말을 올바르고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는 데 의무와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올바른 문인의 자세이고, 세상은 그것을 필요로 하며, 문인에게 요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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