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야생화 시집 (1) [옹이 박힌 얼음 위에서도 꽃은 핀다]
투구꽃
하늘이 점점 높아지기 시작하는 날
햇볕이 아직은 따가울지라도
누구든 가벼운 마음으로 산을 올라 보라
거기 청보라로 투구를 쓰고
무더기로 길게 늘어져서 일제히 사열하는
무명용사들의 넋을 보았느냐
오랜 옛적부터
한나라 맞서 싸우다 숨져간
당나라 맞서 싸우다 숨져간
몽고 거란을 맞서 싸우다 숨진
왜놈 여진을 맞서 싸우다 숨진
외로운 넋들이 거기 있나니
임진왜란 병자호란 항일투쟁 6ㆍ25 목숨 바쳐
이 땅 지켜낸 무명용사들이 거기 있나니
아직까지 제대로 찾지 못하고
바로 세우지 못하고
지금도 눈물로 얼룩지는 슬픈 우리의 역사
언제쯤에나 밝게 웃어 볼까
더는 눈감고 깊이 잠들지 못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벌떡 일어나
꽃으로 떠도는 애닯은 영혼을 보라
누가 우리를 울게 하는가
무엇이 우리의 피를 끓게 하는가
지금까지 우리는 무엇을 하였는가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버릴 수 없는 역사
어두운 하늘 아래
고달프게 지내온 세월이라고 주저앉지 말고
지친 몸 다시 추스려
미움도 끌어안아 사랑으로 바꾸면서
먼 후일 찬란한 햇살 받아들이며
즐거이 춤추며 노래할 이 땅
푸르게 가꾸는 일 서둘러야 않겠나
팔을 모아 어깨를 잡자
발맞추어 힘차게 걷자
산에서 산으로 떠돌아 헤매는
넋이 외로운 투구꽃을 위하여
※ 투구꽃 :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유독성 식물이다. 우리나라 각처의 산에 자생한다. 뿌리는 새발 모양이고, 잎은 어긋나는데 손바닥 모양으로 잎자루가 길고, 3~5갈래로 갈라지며, 가장자리에 거친 톱니가 있다. 8~9월에 보라색의 꽃이 투구 모양으로 피고, 10월에 타원형의 열매가 익는다. 한방에서「초오(草烏)」라 하여 뿌리를 약재로 쓰는데 독성이 강하다. 풀 전체 또는 잎에 맹독성을 품고 있어, 입에 물거나 먹으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