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야생화 시집 (1) [옹이 박힌 얼음 위에서도 꽃은 핀다]
/解/說/
꽃들의 饗宴
— 始原의 情緖 —
朴 利 道
(시인 * 전 경희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1
시인 金承基는 등단 작품에서부터 첫 시집『옹이 박힌 얼음 위에서도 꽃은 핀다』를 上梓하기까지 오로지 야생화를 주제로 작품을 써 왔다. 시인이 된 건 야생화를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야생화를 기리기 위해 시를 쓴 것이다. 한반도의 남단, 대한민국의 산야에 피어나는 꽃, 사철 자신의 계절에 피어나는 꽃, 순수 토종의 꽃에서부터 외지에서 들어온 것, 또는 土種産과 혼합되어 피어나는 것 등, 이 땅에서 피는 꽃이면 그 모두를 묶어 詩心에 담았다.
필자는 金承基의『옹이 박힌 얼음 위에서도 꽃은 핀다』를 읽으며 미국의 헨리 D 소로우를 연상했다. 일상생활에서 문명의 이기를 멀리한 채 숲 속의 자연 속에서 野性의 상황을 직접 체험한 그가 써낸「월든(WALDEN)」의 자연 예찬론은, 인간의 본성을 생각하게 하고 그 본성으로 돌아갈 것을 암시하는 에세이였다. 그의 에세이에서 본 소로우의 자연 친화적인 삶에서 소박한 人格美를 발견할 수 있었다면, 金承基의『옹이 박힌 얼음 위에서도 꽃은 핀다』를 통해 시인의 꽃에 대한 사랑, 그것은 모성에 해당하는 본능적인 꽃사랑의 불사름이라고 대비해 연상되기 때문이었다.
이 시집에 수록된 100여편은 우리나라에 퍼져있는 꽃들을 다양한 시각으로 다루고 있다. 100여종의 꽃을 각각 작품화했다. 꽃의 모양, 꽃의 향기, 꽃의 빛깔, 꽃의 이름, 꽃의 풀이나 나무에 대한 성질, 또는 피어나는 계절적 시기 등을 人事에 비유하거나 현실사회 비판 등등을 문화인류학의 차원에서 추적, 생태학적 차원에서 논하기도 하고, 추억의 대상, 모성애적인 그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金承基 시인은 꽃과 더불어 태어난 시인이다. 그는 꽃시인이 되기 전에 우리나라 야생화에 대한 見學이 전문학자의 경지에까지 이른 것이다.
2
서정시의 핵심은 추억이다. 작품마다의 대상이 무엇이건 대체로 회상의 時制에서 접근하게 된다. 추억은 일종의 회상, 연상, 수상 등의 작용을 아울러 수렴한다. 金承基 시인은 그의 작품에서 꽃을 현상적으로 대상화하거나 내면세계를 관념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절망을 희망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딛고 일어서는,
마음가짐을 바로 다지는
웃음의 집입니다.
— 序詩「꽃」의 끝 부분
마치 서정의 개념을 말해 보는 듯, 온갖 꽃을 묶어 정의하고 있다. 시인의 꽃에 대한 의식이 저러하다면 그의 꽃에 대한 애정의 일단은 다음 詩에서 볼 수 있다.
이리 와 봐. 새롭게 해가 뜨고 있어.
그대가 아무리 고집을 부린다고 달라지진 않아. 지금이라도 문 밖을 나가 보면 알 거야. 온통 파랗게 물들이우고 있는 저 들판이 보이잖니. 모두들 쑥밭이 되었다고 야단법석 떨지마. 빛깔 좋은 꽃이 아무리 많으면 뭘 해. 우리가 있어서 이 들판이 파랗게 빛날 수 있는 거야. 그 꽃들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거야. 우리도 꽃 피울 줄 알아. 참쑥 개쑥 약쑥 곰쑥 산쑥 물쑥 덤불쑥 사철쑥 철 따라 피고 지우는 향기는 그대보다 훨씬 더 향긋하고 강렬해.
지금은 메말라 가는 땅을 파랗게 적시는 것 밖에 못하는 겉치레 식물로 남았지만, 그래도 아직 까진 귀하게 대우받는 국화과 여러해살이 풀꽃, 식용 약용 救荒식물임을 벌써 잊었는가. 바라보는 것조차 외면하며 자꾸만 멀리 떠나려고 하지 마.
오늘은 절망의 비바람에 몸을 떨며 서 있지만, 누구 하나 눈여겨봐 주지 않는 비록 하찮은 잡풀로 남아 있을지라도, 언젠가는 영화로운 앞날이 다시 오리라 굳게 믿으면서 오늘도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거야. 그대가 있어서 새롭게 해가 뜨고, 오늘 내가 있음을 말할 수 있는 거야.
—「쑥」의 전문
우선 이 시인은 꽃에의 대상을 확대, 이 땅에 피어나는 꽃이면 모두들 따뜻하게 품어 안는다.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인 쑥은 우리나라 들판에 지천으로 깔려 있는 풀이다. 이 쑥은 사람의 시선을 끌기엔 부족한 면이 있으나 이 시인의 애정은 대단하다. ①〈온통 파랗게 물들이우고 있는 저 들판이 보이지 않니. 모두들 쑥밭이 되었다고 야단법석 떨지 마.〉, ②〈참쑥 개쑥 약쑥 곰쑥 산쑥 물쑥 덤불쑥 사철쑥 철 따라 피고 지우는 향기는 그대보다 훨씬 더 향긋하고 강렬해. 〉, ③〈식용 약용 救荒 식물임을 벌써 잊었는가. 〉, ④〈오늘은 절망의 비바람에 몸을 떨며 서 있지만, 누구 하나 눈여겨봐 주지 않는 비록 하찮은 잡풀로 남아 있을지라도, 〉, ⑤〈그대가 있어서 새롭게 해가 뜨고, 오늘 내가 있음을 말할 수 있는 거야.〉
인용한 부분을 차례로 정리하면, ① 들에 퍼져 파랗게 돋아나는 쑥대밭을 긍정적이고 애착심을 갖고 바라보는 시각이다. 우리 속담엔「쑥대밭이 되었다」는 등 농사짓는 일에 쓸모 없는 풀로서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점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자연계 현상으로 적절한 자생력과 다른 초목이나 花卉와의 조화를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②는 쑥의 종류와 그 쑥이 꽃피울 때 독특한 향기에 그 꽃의 존재이유를 추가하고 있다. ③ 과거 先祖들의 救荒 식품으로 혹은 약용 등으로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풀임을 상기시킨다. ④,⑤에선 쓸모 없는 일반적으로 평범한 잡풀 정도로 인식하고 있으나 이 땅의 들판을 푸른색으로 수놓으며 새 희망의 풍경으로 다가온다는 예찬의 結句이다.
이 작품의 내용은 植物學者나 韓醫學의 本草學 專攻者가 아닌 시인의 애정 어린 시선으로 접근한 것이 특색이다.
언제 어디서나
풀이면서 꽃이었고
꽃이면서 풀인,
바람에 흔들려도
꺾이지 않는
너
—「억새풀을 꺾는다」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떨리는 가슴
네 곁에 앉아
너의 슬픈 미소를 배우고 싶구나
—「어수리」에서
억새풀에 대한 간명한 묘사이다. 억새풀을 직접 보지 못한 자가 이 부분을 감상하고 억새풀이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하면 어느 정도 비근한 모습에 다가갈 수 있을까 궁금하다. 이 작품을 읽고 한 번 억새풀을 짐작해서 그려보도록 한다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하는 호기심이 인다.
「어수리」의 경우 미나리과의 여러해살이풀인데 정색을 하고 대면하여 느끼는 감동을 묘사하고 있다.
콕콕 찌르지 마
하늘이 깜짝 놀라 일어서잖아
산줄기 가랭이에
한 손을 질러 넣고
다른 손으로 하늘을 감싸안고
대지의 사타구니를 살살 문지르면서
우주를 핥는 거야
애무는 그렇게, 그렇게 하는 거야
—「찔레꽃」의 앞부분
찔레꽃의 짙은 향내, 빛깔 등이 과거 우리 조상의 삶에서 얼마나 가까이, 밀접하게 의식하고 있었는지를 다시 강조할 필요는 없다. 시인은「찔레꽃」에서 그 꽃이 우리네 서민들의 일상에 깊숙이 자리한 설화적 요소를 단순 이미지로 의인화하고 있다. 찔레꽃이 산야에 혹은 동네 어귀에 흐드러지게 피어날 적에, 그 시기(5月)의 사람들의 심정은 다분히 감성이 넘치고 그리움에 속 태우게 되는 때이다. 산야의 언덕에 누워 먼 산을 바라보고,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고 청춘의 꿈이 끝없이 일어나는 때, 찔레꽃은 어떤 의미로 우리네 마음에 와 박혔던가.
이 작품에선 위의 글과 같은 認識下에 찔레꽃에 빗대어 色情的 濃淡을 人事에 비유하여 적절히 조화를 부렸다. 二重의 詩的 효과를 얻기도 한다. 즉, "콕콕 찌르지 마", "가랭이", "사타구니", "애무" 등의 시어들이 찔레꽃에의 인상을(제각기 차이가 있을 수 있음) 전제로 마치 구체적인 남녀간의 애정표시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이는 찔레꽃에 대한 또 하나의 상징성을 추가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부끄럼 타는 새색시
첫날밤을 치루었나
오월 하늘 시트 위에
점점이 박혀 있는 선홍빛 핏방울
살짝 가린 이불 이파리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하늘을 섬겨서 바친 순결의 표징
오늘
하늘과 땅이 合宮을 이루는 날
맑은 햇빛 아래
새소리도 없고
바람도 잠잠,
밤에는 둥그렇게 달이 뜬다 했지
은밀하게 속삭이는 사랑
그 첫경험
부끄러움은 잠시
온몸을 감싸고도는 벅찬 희열
알찬 씨방을 점지하소서
하늘을 받아들이고 나면
눈물나도록 뜨거운 유월
까만 씨로 행복을 키우는
깊고도 벅찬 감동
살 섞는 질펀한 정
첫날밤을 들켜버린
빨개진 얼굴로
고개 숙이고 있는
금낭화
지금은 우리가 축복의 손을 모을 때.
—「금낭화」의 전문
「금낭화」는 「찔레꽃」보다 사실적으로 줄거리를 이끌어 낸다. 민담 속의 성희 구조로 변형시켜 금낭화를 전설적인 이야기를 지닌 친근한 꽃으로 印象지워 준다. 이 작품은 表示的인 드러남보다 그 뒤에 숨긴 강한 연상작용이 앞서는 詩로 二重의 意義를 띤다.
한낮을 끈적하게 적신 뻐꾸기 울음
이내 되어 내려앉는다
통정하는 하늘과 땅
悅樂의 뱃고동이 無等을 넘는다
온통 땀으로 젖는 산천
하늘은 정액의 바다
벌 나비가 비비 몸을 꼰다
휘어지는 가지마다 주렁주렁
가슴 터지는 사랑이다
—「밤꽃」의 전반부
밤꽃의 향내가 남성 호르몬의 냄새와 같다고 해서 우리네 선조들은 이와 관련된 속담을 많이 지어냈다. 가령, 수절과부는 밤꽃 피는 계절엔 밤나무 밑을 지나지 않는다든가, 혼기에 접어든 규수를 밤나무 꽃밭에 데려가 그 반응을 살피면 童貞女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수 있다는 등,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전해 온다.
앞에 인용한 「밤꽃」은 작품과 같이 밤나무 꽃향내와 연관지어 선정적인 愛撫를 떠올린다. 밤꽃을 통해 꽃의 순연한 이미지보다는 추가로 떠올려 주는 이미지가 더 강렬하다.
무슨 힘으로 피웠을까
길다랗게 뽑아 올린 꽃대궁
속이 텅 비었네
거미줄보다도 가는 뿌리에서
밟아도 끈질기게 되살리던 생명이니
온몸이 부서져도 살아낼 수 있었겠지
빈집 뜨락
이젠 너를 밟을 자 아무도 없으니
샛노랗게 웃는 얼굴이
저토록 천진스러울 수밖에
꽃이 지는 자리
한 바탕 꿈으로 남을까
갓털씨 보내고 난 뒤
꽃대궁
덩그러니 하늘 한 켠에서
멀쑥하게 민대머리 받치고 섰다가
백골 되어 쓰러지는 등걸
봄 햇살 아래 눈부시다
—「민들레」에서
서정시의 간결한 표현법에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감상적인 호소가 아닌 민들레의 식물성의 특징을 적절히 풀어가며 거기에 인간적인 情的 분위기를 불어넣은 작품이다.
어디로 가야 할까
온몸으로 피워낸 열정
스러지면
목 메이는 이 荒凉한 들판을 두고
내 영혼 어디에서 뉘여야 할까
— 중략 —
이젠 다들 떠나간 뒤끝
내 웃음이 없었으면
늦가을의 하늘이 얼마나 삭막했으랴
— 하략 —
—「쑥부쟁이」에서
싸리나무 같은 것에
다닥다닥 붙어
웬 옥수수 팝콘인가 찹쌀 강정인가
잊곤 했던
어린 시절 배고픔일까
—「조팝나무 꽃」의 첫 연
인용한 두 편 가운데「쑥부쟁이」는 1인칭 화자로 등장한다. 金顯承, 혹은 릴케의 祈禱詩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가을은 분명, 그 풍경으로 인해 허무한 계절이다. 쑥부쟁이는 <목메이는 이 荒凉한 들판을 두고/내 영혼 어디에서 뉘여야 할까>라고 탄식한다. 사랑에 굶주렸던 이, 老弱으로 병상에 누운 이, 정신적으로 生에의 아무런 보람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이들의 쓸쓸하고 허무한 심정을 헤아려 보게 된다.
「조팝나무 꽃」은 어린 시절 草根木皮로 연명하던 시대의 "배고픔"을 연상시킨다. 어떻게 해서 조팝나무란 이름이 붙여졌을까. 물론 외형상에의 인상에서 붙여진 것이겠지만, 조팝이니 이팝이니 하는 糧食으로 이름 붙여진 것은 우리네 先祖들이 기아상태에서 쉽게 떠오르는 인상을 붙여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면, 밑 부분의 <너를 보면/비어버린 가슴 다시 채울 수 있을까>라는 구절이 그런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거듭 밝히지만, 金承基 시인이 이 땅의 꽃을 찾아 詩로 엮어내는 이 작업에서 첫 시집을 테마시집으로 묶는 열정을 높이 살 수밖에 없다.
6행의 짧은 작품을 하나 더 소개하며 해설을 마친다.
흰물봉선
울 밑에 설 수는 없습니다
그믐달이 함께 있어도
더 외로워야 합니다
달이 없는 밤에도
보이는 하얀 미소로
높은 산을 지키고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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