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야생화 시집 (6) [그냥 꽃이면 된다]
아욱제비꽃
다시 봄,
그러나 제비는 끝내 돌아오지 않습니다.
해마다 찾아오던 제비가 언제부터인가 보이지 않더니, 도시든 시골이든 산이든 들이든 섬이든 이제는 더 이상 제비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먼 길 모퉁이마다 힘주어 삶을 엮는 동안
건조한 일상의 갈피에서 부드러운 이음새가 되어주는 것들을 오히려 단단해지라고 삭막한 결정을 내리며 묶었다 풀었다 매듭짓는 일에 골몰했던 날들
손가락 마디마다 통증으로 얽히고 맺히는 굵은 매듭들
쉽게 풀 수 없도록 헝클어지고 뭉쳐진 시간들이 켜켜이 먼지로 쌓이며 굳은살 박히고
굳어 뻣뻣해지는 것에 감당을 못하는 싫증으로 제비는 멀리 떠나갔습니다
억지로 밀봉되어 섬에 갇혀버린 어두운 숲속
주사약처럼 햇살 퍼져 들어
잔뜩 웅크렸던 계절이 여물게 뭉친 꽃매듭
스르르 진공압축에서 풀린 봄이 환한 꽃으로 터져 나와
눈길 닿는 곳마다
봄볕을 접목하고 끊어진 그늘을 잇느라 소란한데
그 어디에도 제비는 보이지 않습니다
군데군데 빠져나간 기억의 퍼즐은 건망증에 묻혀 아무리 더듬어도 팔락거리던 날갯소리마저 잡히지 않습니다
풀 나무 하늘 바다 모두
한꺼번에 챙겨온 계절을 풀어놓는데
오늘도 머릿속 날씨는 또 안개주의보
유통기한이 지난 꽃그늘의 냄새가 가득 고여 있습니다
기다림이란 아득히 가물거리는 수평선
부풀어 커지는 그리움의 빈자리에
배고픈 입맛이 날마다 점점 날카로워집니다
대체로 삶이 그랬듯이
연약한 것에 칼집 내는 일이 막막하지만
이런 저녁에는 부드러운 두부라도 싹둑싹둑 썰어서 푸른 바람으로 커다랗게 이파리 너울거리는 아욱을 뜯어 넣고 찌개 끓여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제비는
꽃으로 그림 그려 내 안의 벽에 걸어놓아야겠다고
물기 차오르는 마음을 애써 꾸욱 누릅니다
※ 아욱제비꽃 : 제비꽃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 북부지방과 경상북도 울릉도의 산이나 들의 약간 습한 곳에 자생하는 한국특산식물이다. 전체에 흰 털이 있고, 잎은 뿌리에서 모여나오는데 심장 모양의 원형 또는 거의 원형으로 잎자루가 있으며, 가장자리에 낮은 물결 모양의 톱니가 있다. 4~5월에 연한 자주색, 보라, 흰색 등의 꽃이 피는데 입술꽃잎에 짙은 자주색의 줄이 있다. 6~7월에 둥근 모양의 열매가 갈색으로 익는데 흰 털이 있으며 주로 폐쇄화에서 생긴다. 한방에서「자화지정(紫花地丁)」이라 하여 지상부(地上部)의 전초(全草)를 약재로 쓴다. 울릉도에서는 일반인들이「울릉제비꽃」이라고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