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야생화 시집 (7) [꽃, 내게로 와서 울었다]
이삭귀개
혹시나 그대가 내게로 오는 길을 잃어버리거나 나도 그대에게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다 싶을 때는
빛 한 줄기 없는 가운데 종유석이 자라고 있는 동굴을 생각한다
흐르던 용암이 멈추고 死火山으로 굳어지면서 耳鳴으로 귀 근질거리고
어둠 속 가난한 주머니마저 비어져 더 이상 광합성작용은 어렵겠다 싶어질 때 동굴 천장에서 문득
허리에 차고 있던 바구니 속으로 박쥐 한 마리 툭,
떨어지던 것을 기억한다
내 생애 황금박쥐는 없을 거라고,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이 꿈도 꾸지 못하고 살아왔는데,
어느 날 내게 들어온 그대와의 사랑을 오늘도 단단히 깁고 깁으며
이제는 나에게도 우렁각시 있음을 믿는다
지금은 가닥가닥 여기저기 줄을 늘이며 쳐 놓은 통발 들어 올릴 때마다 이삭들이 가득가득
그대가 있어, 이만큼이라도 스스로 광합성을 하며 다시 꽃 피울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한다
혹시나 그대를 잃는 날 앞으로 온다 할지라도 어둠의 천장에서 박쥐 떨어지던 추억 하나만으로도 남은 생애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음을, 나는 온달 그대는 평강이었음을 비망록으로 남긴다
※ 이삭귀개 : 통발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식충식물이다. 우리나라 경기도 이남의 습지에 자생한다. 뿌리줄기는 실 모양으로 땅속으로 뻗고 뿌리에 작은 벌레잡이주머니가 달려 있으며 꽃줄기는 곧게 선다. 뿌리줄기의 군데군데에서 나오는 잎은 주걱 모양이고 줄기에서 나오는 잎은 어긋나는데 선형(線形)이며 꽃줄기에 비늘잎이 어긋난다. 8~9월에 연분홍색의 꽃이 꽃줄기에 드문드문 4~10송이씩 총상꽃차례로 모여 피는데 꽃부리는 윗입술꽃잎의 거의 두 배 정도로 길다. 포(苞)는 비늘잎 모양을 하고 있으며 작은 포(苞)는 선형(線形)이다. 꽃받침은 넓은 타원형으로 젖꼭지 모양의 작은 돌기가 빽빽하게 나 있다. 9~10월에 둥근 열매가 갈색으로 익는데, 꽃받침에 싸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