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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한국의 야생화 시집 (1) [옹이 박힌 얼음 위에서도 꽃은 핀다] 무궁화 두 팔을 벌려 나를 안아 줘. 이제는 사랑 받고 싶어. 영욕스런 어제오늘 순수를 지키기 너무 힘들었어. 더러는 혼혈이 있는 줄 알어. 그러나 탓하지 말어. 그대는 나를 바로 보아야 해. 오랜 굴욕에도 지켜 온 순수, 그 순수를 그대에게 줄 거야. 영화롭던 貊朝鮮의 꿈, 꿈이 아니었음을 다시 한 번 찬란하게 꽃 피우고 싶어. 앞날에는 굴욕이 없어야 해. 자꾸만 시선을 돌리지 말어. 그대에게 향하는 마음을 이렇게 꽃으로 피우고 있잖아. 그대는 받아 줘야 해. 그대는 나에게 있어 별이야, 하늘이야. 그대의 눈이 나를 향해 있을 때, 그대의 넓은 가슴으로 나를 안을 때, 나는 그대 안에서 영원히 순수한 꽃으로 피어나는 거야. 그렇지, 그렇.. 더보기
제비꽃 [꽃] [열매] 한국의 야생화 시집 (1) [옹이 박힌 얼음 위에서도 꽃은 핀다] 제비꽃 오랑캐꽃으로 부르지 말아요 어찌 그대 조상이 시달림 받은 옛날 오랑캐 병사의 투구를 닮았겠나요 만주족 몽골족, 우리와 같은 濊貊朝鮮 檀君의 후예, 한 갈래라는 걸 억울하게도 모르고 있었나 봐요 오랜 역사와 빛나는 문화유산 아름다운 전통이 번영하는 땅에서 어울리는 이름 맵시 있는 향기로 가꾸어야 않겠나요 정답고 예쁘게 불러 주세요 눈 덮인 먼 산, 빛바랜 수묵화를 담채화로 바꾸고 있는데 강남 간 제비는 언제 불러오나요 지금쯤 머리 위에서 지지배배 노랠 불러야잖아요 꽃술 안에 가득 고여 있는 햇살 연초록 새 생명을 잉태하는 사랑이어요 집 울타리, 길가 언덕배기, 논둑 밭머리 그대의 발길 옆에서 목을 길게 늘이는 사랑이어.. 더보기
우리밀을 위하여 한국의 야생화 시집 (1) [옹이 박힌 얼음 위에서도 꽃은 핀다] 우리밀을 위하여 청밀 잎을 밟으며 겨울을 따뜻이 보내던 어린 시절 있었는데, 초여름 밀꽃이 피면 그 자리에 그렇게 피우는 거라고 무심코 지냈던 시간이 있었는데, 우리밀 없어진지 오래인 지금 잃어버린 역사 되찾으려는 우리밀 살리자 애쓰는 사람들 보며 아득히 향수에 젖는 나는 누구인가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 손수 갈아 만드시던 밀국수 대신 지금은 대중음식점에서 아무렇잖게 방부제 섞인 수입밀 칼국수를 값비싸게 눈물 찔끔찔끔 바쳐 가며 별식인 양 훌훌훌 들이키고 있는 너는 누구인가 이제는 우리가 손을 모을 때 발 벗고 나서서 우리밀 되찾아야 할 때 자꾸만 수수방관하는 우리는 누구인가 순이야 영이야 윤이야 석이야 우리 함께 묵정밭을 갈지 않으련 다시.. 더보기
도꼬마리 [암꽃] [수꽃] [암꽃과 수꽃] [열매] 한국의 야생화 시집 (1) [옹이 박힌 얼음 위에서도 꽃은 핀다] 도꼬마리 너를 잡은 손 놓지 않을래 비 오고 바람 불어도 한 번 잡은 손 놓지 않을래 베여지고 쓰러질 때마다 안간힘으로 꽃 피운 시간 얼마 되었다고 까맣게 열매 맺히려 하는데 성가심을 참지 못해 나를 떨치는가 오랜 세월을 세월 그대로 꽃 피우지 못한 눈물로 얼룩진 역사 더는 어두운 하늘 아래서 울게 할 수는 없잖아 들판은 함께 가야 하는 가시밭길 아픈 살 긁히고 피 흘려도 좋으니 떨쳐내지 마 이대로 한겨울을 꼭 잡고 있어야 다음해 기쁨의 새싹 돋을 수 있어 다시는 놓지 않을래 온 밤을 내내 바람 불어도 너를 잡은 손 놓지 않을래 ※ 도꼬마리 : 국화과의 한해살이풀로 우리나라 각처의 들이나 길가에 .. 더보기
쇠별꽃이 내게로 와서 [새싹] [꽃] [열매] 한국의 야생화 시집 (1) [옹이 박힌 얼음 위에서도 꽃은 핀다] 쇠별꽃이 내게로 와서 내 안으로 떨어진 은하수 여기저기서 무더기 꽃으로 피어 지상을 밝힌다 하늘보다도 어두운 우리 땅의 역사 차마 볼 수 없어서 내일을 지키는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된다 너와 나 할아버지 때부터 울고 웃으며 살아온 세월 그대로 꽃 피우지 못한 잃어버린 우리의 얼굴 이제는 되찾을 때 일그러진 주름살을 바로 펴야 할 때 날더러 송곳이 되라 한다 날카로운 쇠꼬챙이 조금은 피 흘려도 좋으니 아픈 살을 도려내듯 찌르라 한다 지난 날 생각하며 눈물 흘리면 고름이 살 될까 쉬어서 가는 길을 고달프다 주저앉으면 저 산이 내 품으로 들어올까 흐르는 물도 제 소리 낼 수 있을까 어두운 세상 더는 그대로 볼 수 없다고 .. 더보기
목화 [꽃봉오리] [꽃] 한국의 야생화 시집 (1) [옹이 박힌 얼음 위에서도 꽃은 핀다] 목 화 이루지 못한 한이 있어 나무의 꽃이라 했는가 영화롭던 貊朝鮮의 꿈은 뿌연 안개 속으로 아득하고 붓두껑에 실려온 기구한 운명이 캐시밀론에 밀려도 허옇게 웃음 흘리며 두 번씩 피는 꽃 그대여, 내 품에 안겨다오 여린 마음을 힘껏 보듬어 안으로만 삭이는 그리움 까만 눈물이 되어 맺혔네 ※ 목화 : 무궁화(아욱)과의 한해살이풀로 동아시아 원산이며, 우리나라 각처에서 재배한다. 줄기는 곧게 서고, 잎은 마주나는데 손바닥 모양으로 잎자루는 길고, 3~5갈래로 갈라지는데 갈래의 끝이 뾰족하다. 8~9월에 연한 황백색의 꽃이 피고 시간이 지나면서 홍자색으로 변한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드는데, 처음 필 때는 유백색이었다가.. 더보기
박태기나무 꽃을 보면 한국의 야생화 시집 (1) [옹이 박힌 얼음 위에서도 꽃은 핀다] 박태기나무 꽃을 보면 봄 길을 걸을 때마다 담장 옆에만 꼭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가지마다 팥알 같은 꽃을 촘촘히 달고 있는 박태기나무는 가슴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어릴 적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보릿고개의 마루턱에서 손자의 생일을 위해 열 돌을 먹어야만 무병장수한다며 십 년을 한결같이 수수경단을 만들던 쭈글했던 할머니의 손을 생각하게 한다 볼 수 없는 할머니의 얼굴이 휑한 가슴 속에서 되살아나고, 그렇게도 먹기 싫었던 수수경단의 오돌톨하게 붙어 있던 팥알들이 오늘 박태기나무 꽃으로 다시 피는 것은, 나이를 먹으면서 어쩔 수 없이 할머니를 닮아 가는 건 아닐까 깜짝 놀라며 진저리를 치곤 한다 ※ 박태기나무 : 콩과의 낙엽성 활엽 .. 더보기
선인장과 할머니 한국의 야생화 시집 (1) [옹이 박힌 얼음 위에서도 꽃은 핀다] 선인장과 할머니 성냥갑 같은 방안 화분으로 창가에 놓여져 담배 연기를 호흡해야 하는 생활 화살처럼 쏟아지는 시선이 따갑습니다 뭉툭한 줄기 가시만 삐죽빼죽 「왜 이렇게 못 생겼어요?」 빙그레 웃으시던 할머니의 얼굴 불면증으로 시달린 끝의 서툰 잠 그래서 꾸는 가위눌린 꿈 삶의 멍에가 되었습니다 평생 듣지 못한 할머니의 고향 「그립지 않으신가요?」 미간 찡그리시던 할머니의 얼굴 언뜻 회한의 그림자를 무심코 보았습니다 바람이 시퍼렇게 칼날을 세우는 겨울밤 그 피멍든 세월을 어루만지시더니 어느 봄날 마침내 한 송이 꽃을 커다랗게 피우고 나서 별이 되신 할머니 그립습니다 몸 속에 흐르는 할머니의 유전인자 뭉툭툭한 줄기 투박한 껍질을 쓰고 삐죽삐죽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