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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풀 잎꽃차를 마시며 [꽃] [열매] 한국의 야생화 시집 제7집 [꽃, 내게로 와서 울었다] 차풀 잎꽃차를 마시며 커피를 절대 마시지 말라는 의사의 처방, 솔잎 뽕잎 댓잎으로 덖은 정혈차(淨血茶)를 마셔 보고 망고스무디며 자몽이며 메리골드며 카모마일이며 다 차로 마셔 봤지만 목 넘김 고소한 블랙커피 첫사랑의 금단현상을 견딜 수 없어 마침내는 집 울타리 너머 둔덕에 무리 지어 자라는 차풀까지 뜯어다 덖었는데, 손 불편한 나를 대신해 생애 마지막 늦은 인연의 사랑지기가 덖어서 끓여 주는 차풀 잎꽃차가 첫사랑 흔적을 지워준다 한때 건강차로 인기 좋던 꽃이 어쩌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잡풀로 밀려 났을까 노랗게 웃어야 했던 옛날 꽃시절이 행복했을까 잡초 되어 풀밭에 묻혀 사는 지금은 행복할까 차를 마시는 동안 찻잔 속에서 태풍으로.. 더보기
병아리풀 한국의 야생화 시집 제7집 [꽃, 내게로 와서 울었다] 병아리풀 화장을 한다는 건, 자기 얼굴 위에 정성스레 편지를 쓰는 일입니다 먼저 바디필링으로 각질 벗겨내고 클렌징크림으로 다시 한 번 닦아낸 다음 스킨과 에멀젼을 塗布하고 나서 그 위에 리프팅 링클세럼으로 또박또박 낱말 받아쓰기하듯 꾹꾹 눌러 쓰면 비로소 편지는 완성됩니다 때때로 상황에 따라 필요에 따라 달리 하는 색조화장은 덤으로 追伸합니다 그렇게 완성된 편지는 봄에게로 배달됩니다 딱딱하게 얼어버린 땅을 봄비가 부드럽게 녹여주고, 봄볕 아래 어미 따라 나들이 나온 병아리떼 뿅뿅뿅 놀고 간 오후, 아유, 예뻐라, 예뻐라! 여기저기 병아리발자국마다 뾰족뾰족 새싹들이 돋아나 자랍니다 편지는 다시 봄에서 여름가을로 배달됩니다 편지 읽으며 쑥쑥 자란 새싹들.. 더보기
지하철 환승역과 자귀풀 [꽃] [열매] 한국의 야생화 시집 제7집 [꽃, 내게로 와서 울었다] 지하철 환승역과 자귀풀 지하철 환승역은 꿈꾸는 작은 풀꽃들 소통의 터미널이다 도시를 떠나온 풀꽃들과 도시에서 밀려난 풀꽃들 만남보다 헤어짐이 더 많은, 저마다 강을 이루어 물결로 흐르고 있다 낮에는 이파리 펼치고 밤에는 잎을 오므리는 금슬 좋은 이력서 들고 양재역 만남의 광장 한쪽에 우두커니 서 있던 자귀풀, 어느 날 문득 내 가슴마당 한가운데로 들어와 햇빛 한 줄기 들지 않는 가을장마 속에서도 더 이상 이별을 겪지 않는 꽃송이 피우려 하고 있다 몰려 왔다가 몰려가고 금세 또 몰려 왔다가 사라지는 말들의 換乘, 그 밀물과 썰물의 시소게임 위에서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사랑 지키려는 사랑지기의 呼名이 寂寞했던 나의 맥박을 뛰게 .. 더보기
나비나물 날아오르다 [꽃] [열매] 한국의 야생화 시집 제7집 [꽃, 내게로 와서 울었다] 나비나물 날아오르다 무릇 한 생에서 꽃으로 사는 시간은 얼마일까요 반짝 한순간 불꽃 튀는 사랑을 위해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사마귀처럼, 저토록 절절한 아우성으로 겨우 며칠 소리 지르기 위해 칠 년을 땅속에서 굼벵이로 견뎌야 하는 매미처럼, 애벌레로 번데기 고치로 살아온 사랑지기의 30년 어떤 나비의 절박한 꿈을 살아냈을까요 꽃을 피운다는 것, 늘 성스럽기만 할까요 이제 길고 긴 장마가 끝났습니다 쨍하고 햇빛이 나니 깃털처럼 몸이 가볍습니다 장마 끝나자 폭염, 앞뒤 창문 열어놓으니 맞바람 들이쳐 그나마 시원합니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햇볕 받고 있으려니, 상쾌해진 몸이 노곤노곤합니다 얼마 동안을 나비로 날아다닐 수 있을까요 ※ 나비나물 :.. 더보기
까치깨는 그렇게 한국의 야생화 시집 (7) [꽃, 내게로 와서 울었다] 까치깨는 그렇게 아침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소식이 온다 했지만 까치 엊저녁에 울었는데도, 오늘 팔월의 크리스마스처럼 붉은 코 루돌프 사슴이 이끄는 썰매를 타고 산타할아버지 선물 안겨주듯 그렇게, 기쁜 사람이 내게로 왔습니다 갈수록 심해지는 지구온난화와 코로나19 펜데믹 세상에서는 옛말이라고 다 맞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늦은 여름날, 땡볕이 빗발치고 있지만 천둥 치고 소나기 장대비 쏟아지고 태풍 불고, 하면서 곧 가을 오겠지요 그러나 가을은 짧습니다 기쁘게 맞이한 향기 금세 가을 지나고 겨울 오더라도 아무런 의미 없이 흩어지거나 묻히지 않게 이제부터라도 매일 종일토록 깨를 볶아야겠습니다 작은 꽃일지라도 꽃받침 뒤로 젖혀지지 않게, 열매에 털 나지 않게 .. 더보기
고광나무의 길 한국의 야생화 시집 (7) [꽃, 내게로 와서 울었다] 고광나무의 길 코로나19 펜데믹의 그늘 아래에서는 꽃들도 마스크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켜야 합니다 푸른 이파리가 독해지는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건너가는 5월, 이른장마 속에서 더위는 장대처럼 쑥쑥 키가 자라는데, 땡볕 속에서도 수그러들 줄 모르는 코로나의 기세 귀 쫑긋 안테나를 세워도 백신 개발 소식 아득하기만 합니다 뒤늦게 가까스로 들여온 백신으로는 부족한 접종완료 집단면역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그러나 홀로 높은 곳에서 빛을 발하는 고광나무는, 높낮이를 모르는 벌 나비 위해 벌려 놓은 가게의 문을 닫을 수가 없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아무데서나 풀풀 날리던 꽃향기도 참고 참아서 빌딩들이 모여 사는 도시공원에 풀어놓아야 합니다 공원사람들과 어울려 살.. 더보기
2020년 한국시인협회 사화집 [꽃] ㅇ 시집명 : 2020년 한국시인협회 사화집 ㅇ 시집 제목 : 꽃 ㅇ 엮은이 : (사)한국시인협회 ㅇ 지은이 : 나태주 외 ㅇ 발행처 : (주)동학사 ㅇ 발행일 : 2020. 12. 18. |차|례| 서문 초대합니다 / 나태주(한국시인협회장) 003 감태준 부용 잔상 / 22 강경호 꽃의 사원 / 023 강문석 뭉게구름 꽃 / 024 강상기 목련 / 025 강세화 물방울 꽃 / 026 강수니 수레국화 / 027 강애나 구슬 낀 청매화 슬픔 / 028 강영은 산수국 통신 / 029 강인한 능소화를 피운 담쟁이 / 030 강진규 꽃 피는 숨결 / 031 고경숙 명자꽃 / 032 고경자 동백꽃 / 033 고영조 벚꽃 / 034 고옥주 희망에게 꽃을 / 035 고 원 넝쿨장미 / 036 고정애 아름다운 시위(示.. 더보기
멸가치 인생 [새싹] [꽃] [열매] 한국의 야생화 시집 (7) [꽃, 내게로 와서 울었다] 멸가치 인생 누구 하나 따뜻한 눈길 보내주지 않아도 별 가치 없는 존재, 결코 아니에요 맛깔스런 봄나물로 반짝였던 날들 맵차게 그리워도 잊혀진 옛날 전혀 슬프지 않아요 당신만이라도 꼭 기억해줘요 빛이 바래갈수록 다시 크게 쌈을 싸 봐요 널따란 생이파리 하나만으로도 데치고 무치고 볶지 않아도 나물이 되는 우리 사랑 감싸 안을 존재의 이유 여전히 충분하다는 걸, 증명해 줄 거예요 잎이 무성한 여름 지나갈 때면, 보석처럼 빛나는 자신만의 색깔로 향기로 꽃필 거예요 저기 반투명 유리벽 너머 금고에 쌓아둔 지갑 속 행복한 신용카드 맑아졌다 흐려지고 흐려졌다 맑아지고, 우리 사랑놀이처럼 시소를 타고 있어요 한도 초과 않도록 어루만져줘요.. 더보기